디지털 시대에 서점에 가서 종이책을 펼쳐드는 어느 ‘애서가’의 고백
*지식인의 서재 :서울대학교 빅데이터 기반 지식정보플랫폼 LikeSNU에서는 우리 사회 각 분야 지식인의 마음 속 서재에 꽂혀 있는 다양한 책들을 소개합니다. 첫 번째 지식인의 서재로 우리 대학 동문이자 숭실대학교 정보사회학과 교수인 정인관 지식인의 서재를 소개합니다.
| 1. 프롤로그
2025년 새해 벽두, “애서가이자 사회학 전문가인 교수님께 <지식인의 서재> 1호 글을 청탁”한다는 도서관 담당관 선생님의 이메일을 확인하고 잠시 묘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애서가’, ‘전문가’, ‘지식인’이라는 단어가 저를 표현하기엔 조금 과장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아니, 분명 그 단어들은 제 스스로 그렇게 보이길 바라는 상(image)이긴 하지만, 그러한 전략이 나름 ‘성공적’이었음을 이메일을 통해 확인한 순간 오히려 그 상과 현실의 간극 사이의 심연에 빠져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전문가’의 사전적 정의는 “어떤 분야를 연구하거나 그 일에 종사하여 그 분야에 상당한 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입니다. 저는 학부부터 대학원까지 사회학을 공부해서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상당한 지식과 경험을 갖췄다고 말하기는 민망합니다. 전공분야인 불평등에 대한 제 낡은 지식이 어디선가 들통이 날 것 같아 깊이 있는 질문이라도 나올려 치면 줄행랑을 친지가 오래입니다. 한편 ‘지식인’의 사전적 정의는 “일정한 수준의 지식과 교양을 갖춘 사람”입니다. 오랫동안 이것저것 들추다보니 어떤 분야에 대해 얄팍한 지식을 갖추고 있긴 하지만 기초적이면서도 중요한 많은 영역에 있어서는 기본적인 소양도 갖추지 못했음을 확인할 때가 많습니다. 상황이 이렇기에 스스로를 ‘지식인’이라고 명명하는 것은 진짜 지식인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애서가’는 “책을 매우 좋아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한국어 위키백과의 ‘애서가’ 항목을 찾아보니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애서가는 독서를 좋아하는 것을 떠나 책 자체를 애호하고 수집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을 가리킨다”고 적혀 있네요. 애서가라면 마땅히 책을 수집하는 것을 넘어 그것을 빠짐없이 읽는 사람을 가리킨다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수집에 방점이 찍혀있다니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 칭호(!)를 받아들이기로 합니다. 이렇듯 두서없는 반성적 사유로부터 시작된 이 글은 어느 애서가가 쓰는 책 수집의 기록이자 변명이며, 다른 사람들은 어떤 책을 읽는지 바라보는 관찰기이자 정기적으로 책 몇 권씩 구입해 책상에도 쌓아놓고 가끔은 손에 쥐고 다니면 좋지 않겠냐고 설득하는 호소문이기도 합니다. 대한민국에서 두 세 손가락에 꼽힐 만큼 많은 책을 보유하고 있는 매력적인 곳(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에서 제공하는 콘텐츠의 일부(게다가 1호라니!)로 제 이야기를 독자들과 나눈다고 생각하니 민망함을 동반한 ‘묘한 감정’은 어느새 사라지고 들뜬 마음만 남았네요.
| 2. 책 구경, 책 구입, 책 읽기
어린 시절 저희 집에는 책이 정말 많았습니다(사실 저의 기여로 인해 지금은 더 많은 책들이 있습니다). 책장을 기어 올라가다 떨어져 엉덩방아를 찧었던 기억, 여기저기 쌓여있는 책들을 무너뜨린 기억, 한글을 처음 배우며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을 한자 한자 읽었던 기억이 아련하게 남아있습니다. 그 중 한 권인 <영구혁명론>의 제목을 또박또박 읽으며, 당시 인기 절정이었던 개그 캐릭터인 ‘영구’에 대한 책인 줄 알고 “영구가 왜 혁명을 해?”라고 부모님께 여쭤봤던 적도 있습니다(과연 ‘혁명’의 뜻은 알았을까요?). 이렇듯 어릴 적부터 책이라는 ‘물질’은 제겐 자연스러운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사회학 연구를 하면서 한 사람의 ‘문화자본’을 측정하는 문항 중 하나가 ‘어린 시절 집에 얼마나 많은 책이 있었는지’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문화자본이란 개인이 특정한 사회적 지위를 얻거나 유지하기 위해 사용되는 지식, 기술, 교육, 그리고 문화적 취향을 포함한 비물질적 자원을 의미합니다. 책에 대한 물질적 익숙함은 그것을 펼쳐보고 그 안에 있는 지식을 습득하는 행위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며, 이렇게 습득된 지식은 한 사람의 학업 성취와 사회적 성공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자라는 과정에서 책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책이 있는 공간에서 편안함을 느끼게 된 저는 부모님을 따라 서점에 갈 때면 그 안에서 오랫동안 잘 머물렀습니다. 책 표지를 비교하며 이 책보다 저 책이 더 예쁘게 잘 만들었다는 평가를 했고, 책 안쪽을 들여다보며 작가의 약력을 읽기도 했습니다. 서점에 왔으니 책 한권 골라보라는 부모님의 제안에 가장 그럴듯한 표지의 책들을 집어들기도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어린 나이에 읽기엔 지적으로 무리인 책들도 많았지만 부모님께선 제가 고른 책들을 (그것이 미성년자가 보기에 부적절한 것만 아니라면) 검열하지 않고 사주시곤 했습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자 어머니께서 손에 쥐어주신 오천 원이나 만 원권 한 장을 손에 쥐고 혼자 서점에 갈 때도 많았습니다. 그렇게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을 지내다보니 80권짜리 해적판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조정래의 <태백산맥>과 박경리의 <토지>, 도올 김용옥의 책들, 심지어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 전문적인 책들(대표적으로 린 챈서의 <일상의 권력과 섀도매저키즘>이라는 책)이 책장을 가득 채우게 되었습니다. 책장의 빈칸에 책을 한권씩 꽂을 때마다 느낀 희열은 수십 권의 위인전 전집이나 백과사전이 한 번에 책장을 채우던 것과는 질적으로 달랐습니다. 주로 베스트셀러였던 책들이 제 방에 쌓여가자 저 안엔 무슨 내용이 담겨 있기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찾아 읽는지 궁금해졌습니다. 구입한 책들의 일부를 그렇게 읽기 시작했습니다. 세 가지 요소의 화학적 결합이 제게 책읽기의 즐거움을 선사했습니다. 내용, 책의 질감, 종이 냄새가 그것입니다.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작가의 필력, 조금은 까끌까끌한 종이와 활판인쇄 특유의 요철(凹凸)감각, 시간이 깊이에 따라 그 향이 다른 종이 냄새는 글의 내용에 입체감을 더해줬고 어떤 책에 대한 기억을 저장하는데 있어 어느 하나 빠뜨릴 수 없었습니다. 책의 어디쯤에 어떤 내용이 있었는지 감각적으로 기억하는 습관도 생겼는데, 아직도 종종 ‘거기 책 중간 부분 접힌 곳 오른쪽 위’란 식으로 제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의 위치를 제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서재와 연구실에 책이 쌓여가면서 이북을 통해 책을 읽으련 시도를 해본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제게 있어 책의 물질성이 독서행위의 한 축이며, 매끈한 화면을 통해 활자를 읽는 것으로는 독서의 기억을 완성할 수 없음을 깨닫게 했습니다. 세 번의 시도과정에서 구입한 세 개의 이북 리더기는 이러한 깨달음을 거쳐 다른 누군가의 것이 되었습니다.
| 3. 도서관, 빌려 읽기
사실 지금 제게 책은 웬만하면 ‘사야하는 것’입니다만 부지런히 빌려 읽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21세기의 첫해 대학에 입학해 중앙도서관에 처음 발을 내딛었던 3월의 어느 날, 저는 그 안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방금 전까지 인문학 서가를 거쳤던 것 같은데, 별 생각 없이 걷다보니 알 수 없는 자연과학서적의 숲이 저를 내려다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뭔가 불친절하고 거대한 공간에 갇혀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던 순간, 이 책들도 어차피 나랑 비슷한 지력을 갖춘 사람들이 펼쳐보는 것이란 근거 없는 자신감에 하얀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자인, 블랙홀과 관련된 책을 한 권 뽑아 대출했습니다. 몇 달이 지나 절반도 읽지 못한 채 지각 반납해 연체료까지 내야했으나 이미 수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쳐 간 게 분명한 그 책에 묻어 있는 흔적, 서가의 수많은 다른 책들과 이웃해 살며 묻은 도서관 특유의 향기는 새 책들을 모아놓은 서점에서 만날 수 있는 그것과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이후 자주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서가 끝 창문 앞쪽에 놓여 있는 의자에 앉아 책 읽기를 즐겼습니다. 여담으로 이때 어떤 학생이 창문 밖으로 읽던 책을 던지는 것을 보았는데, 같은 장면을 훗날 학과는 다르지만 저와 동갑이고 동기인 서울대 출신 감독이 만든 어떤 영화(<들개>라는 제목의 독립영화입니다)에서 마주하기도 했습니다. 술술 읽히는 책보다는, 그렇지 않아서 도서관에 오래 머무를 수 있는 책들을 주로 빌렸습니다.
저보다 앞서 이 책을 읽은 사람은 누구일지,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또 다른 어떤 책들을 읽을지 무척 궁금했습니다(LikeSNU 시스템의 출범을 보며 남다른 감회에 젖었던 이유입니다). 도서관이 전산화되기 전에는 책 맨 뒤에 대출카드가 붙어 있었는데 그 카드에는 빌린 사람의 이름과 대출 날짜 및 반납 날짜가 시간 순서대로 적혀있었습니다. 2001년에는 이미 중앙도서관도 전산화가 되었지만 아직 제거되지 않은 대출카드가 붙어 있는 오래된 책들을 종종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 목록에서 저보다 20년 앞서 같은 책을 빌려 읽은 교수님의 이름을 확인할 때면 도서관이란 공간이 더 친근하고, 좁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학부생과 대학원생, 그리고 연구원 신분으로 서울대에 머물렀던 기간은 군 휴학을 제외하고도 8년인데 그 뒷부분까지도 중앙도서관에서 종종 길을 잃곤 했습니다. 다만 어느 순간부터는 길을 잃어버려도 더 이상 무섭지 않았습니다. 나가는 길을 찾으려하기보단 ‘아직도 처음 와본 공간이 있다니’란 감탄을 내던지고, 한 구석에 앉아 눈앞의 아무 책이나 펼쳐보기도 하고, 손에 쥐고 있던 책을 읽기도 했습니다. 최근에 업무차 중앙도서관에 들렀다가 서가의 꽂혀있는 책들을 보며 오래전 제가 읽었던 책들 중에도 지금 누군가가 읽고 있는 게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떨리기도 했습니다. 제 마음과는 별개로 사실 여러 통계수치는 오늘날 사람들이 과거에 비해 책을 덜 읽고 있다고 말합니다. 대학생들도 다르지 않습니다. 굳이 책을 읽지 않아도 더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게 정말 많은 세상입니다. 읽을 것도, 빠르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통로도 정말 많아 책을 읽는 것의 효용성이 점차 평가절하 되는 디지털 세상에서 책, 그 중에서도 종이책의 미래는 불투명해보입니다. 흥미로운 현상은 종이책을 읽는 것이 낡고 드문 행위가 되어감에 비례하여 종이책 독서가 힙(hip)한 행위이자 타인과의 ‘구별짓기’의 대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인스타그램에 올릴만한(instagrammable) 예쁜 책을 찾는 사람들과, 이에 맞춰 리커버북을 출간하는 출판사들의 모습을 보며 종이책의 미래에 대한 작은 희망을 느껴봅니다.
| 4. 2024년의 서울대 학생들은 어떤 책을 읽었을까?
문득 요즘 후배들은 어떤 책을 즐겨 읽을지 궁금했습니다. 서울대 도서관의 ‘2024년 독서 트렌드 데이터’ 파일을 살펴보니 학부생 최다 대출도서 10위 안에 열 권 중 일곱 권이 문학작품, 한권은 회고록, 한권은 과학 에세이(어쩌다보니 저자분과 유튜브를 한 편 같이 찍은 적이 있어 더욱 반가운 마음입니다), 다른 한권은 심리 관련 책이네요. 역시 전공을 뛰어넘어 가장 소구력이 있는 건 문학작품, 그 중에서도 소설이었습니다. 연말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학부생 최대 대출도서 1위는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이 2025년 이러한 독서 트렌드를 한층 강화시킬지 궁금해집니다. 제가 읽어본 책도 여덟 권이나 되니(자랑 맞습니다) 혹시라도 학생들을 만나면 뭔가 나눌 수 있는 대화의 고리가 있겠구나 싶은 생각에 절로 기분이 좋아집니다. 스무 해 전에도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와 한비야의 여행기가 최고 인기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황석영, 조정래 등의 소설이 오랫동안 수많은 학생들의 손을 탔던 기억도 생생합다. 학부 1학년 대출도서 9위가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인걸 보며 좋은 책은 시대를 넘어선다는 교훈을 떠올립니다. 초점을 학술서적으로 한정했을 때 최상위권에 있는 <일반통계학>과 <미적분학>, <맨큐의 경제학>, <서양음악사>도 여전히 반갑습니다. 기분 좋은 의미에서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학부생이나 대학원생이나 3월에 총 대출권수가 가장 많은 것도 눈에 띕니다. 학기 초라 교재를 대출해서라고 하기엔 9월보다 월등하게 높은 수치입니다. 캠퍼스에 낭만도 다시 살아나고, 책 좀 읽어야지 하는 다짐도 들어서 일까요? 세월 저편의 저도 그랬던 것 같아 잠시 혼자 미소지어 봅니다. 사람이 사는 모습, 그리 다르지도 않고 잘 변하지 않단 생각에 마음이 편해집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네요. 문학 이외의 대출도서를 살펴보면 인공지능, 뇌과학, 불안, 마음, 죽음, 친화력과 같은 단어가 들어간 책들로 가득합니다. 인간 내면에 대한 관심의 증대, 빠른 사회변화로 인한 불안감도 크지만 그 안에서 사람들과 관계를 잘 맺고 싶은 마음 같은 것들이 느껴지는데 이건 20년 전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라 사회학자에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을 남깁니다.
| 5. 내가 좋아하는 10권의 책
유학시절 페이스북에서 인생 책 10권을 소개하는 릴레이가 펼쳐진 적이 있습니다. 지인이 저를 태그 했길래 저도 목록을 남긴 적이 있는데, 유학시절이라 ‘엄근진’해서였을까 기초 사회 통계 교재, 불평등관련 교과서도 포함시키는 ‘만행’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이번 원고청탁 과정에서도 10권의 책을 소개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도서관에서 훌륭하게 구축한 LikeSNU상에서 책들의 네트워크를 확인해보려 한다는 야심찬(!) 계획도 들었습니다. 제 전공분야 책 10권을 추천하면 그림은 명확하고 멋지게 나올 거라 확신합니다. 전문가임은 극구 부인하나 어쨌든 ‘사회학자’ 타이틀을 달고 사는 입장에서 불평등 관련 도서 10권을 적어낼 준비(이게 아마 담당자 선생님께서 애초에 생각했던 방향이 아니었나 싶네요)를 끝마치고 원고 첫 장을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글을 쓰다 보니 어느새 저는 40대 사회학자가 아니라 ‘아직 거기에 사는’(요새 데이식스 노래에 푹 빠져 삽니다. 이해해주세요) 20대의 기억으로 빠져 들어갔습니다. 그때 별 생각 없이 집어 들었다 밤을 새며 읽었던 책, 작정하고 집어들었으나 다 읽는데 1년이 넘게 걸린 책, 이런 책을 쓸 수 있는 사회학자가 되고 싶단 마음이 들게 해준 책, 이런 책들이 쌓여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여전히 지식인은 아닌) 제가 된 게 아닌가 싶네요. 이렇게 생각하니 LikeSNU 책 네트워크가 하나로 연결되지 않는, 고립된 노드(책)들이 둥둥 떠 있는 그런 독서의 궤적도 아름다운 게 아닐지, 효율성이나 지식의 축적만으로 이해할 수 없는 잡식이 주는 풍요로움을 적어도 대학시절에는 권장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듭니다. 2025년 1월 제 기억을 스치고 지나가는, 아니 그 기억 속 어디에 파묻혀 제 생각과 행동에 조금씩 묻어나오는 책 열권을 살짝 소개해드리겠습니다.
1~2) 조은, <사당동 더하기 25>, <도시빈민의 삶과 공간>
사회학자 조은의 <사당동 더하기 25>는 한국사회의 하층계급을 대변하는 정금순 할머니 가족 3대에 걸친 빈곤의 기록입니다. 전쟁, 재개발을 거치며 늘 밀려나야 했던 이 가족의 연대기는 대한민국의 수립과 성장의 연대기이며, 그 안에서 잊힌 사람들의 기록입니다. 또 ‘한강의 기적’이란 서사에 가린, 지극히 예측 가능한 계급 재생산의 기록이기도 합니다. 저자는 1980년대 중반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철거가 예정된 사당동의 무허가 주택에 사는 이들을 연구 대상으로 만나게 됩니다. 정할머니 가족은 그들 중 하나였습니다. <도시빈민의 삶과 공간>은 그때의 기록을 담고 있는 책입니다. 그렇게 시작된 저자와 이 가족의 인연은 지금까지 40여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따뜻한 시각으로 차가운 현실을 보여주는,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사당동 더하기 25>에는 저자가 직접 연출한 ‘사당동 더하기 22’ 란 제목의 DVD가 붙어 있습니다. <도시빈민의 삶과 공간>을 처음 읽었던 건 2002년 봄, 장소는 인문대 2동 앞 벤치였습니다. 제 삶의 방향이 어렴풋하게나마 결정된 순간이었습니다.

3) 스티븐 레비츠키, 대니얼 지블랫,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하버드대의 정치학자인 레비츠키와 지블랫이 쓴 이 책은 이미 너무나 잘 알려진 책이라 많은 분들이 읽어봤을 거라 생각합니다. 저 역시 2017년에 책이 처음 나왔을 때 읽어봤습니다(참고로 원서도 영어공부하기 참 좋습니다. 어렵지 않게 우아하고 깔끔한 문장들이란!). 그렇게 잊고 지내다 최근 어떤 글을 쓰는 과정에서 다시 꺼내 보았습니다. 저자들은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되는 과정에서 암묵적으로 지켜왔던 규범이 무너지고 법이 허락하는 모든 걸 다 동원해서 대결하려는 태도(헌법적 강경성)의 증대가 민주주의를 어떻게 무너뜨리는지 여러 국가의 사례를 바탕으로 생생하게 그려냅니다. 무척 재미있게 읽었던 책인데 이번엔 좀 무거운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습니다. 12.3 계엄 이후 한국사회, 그리고 한국 민주주의의 방향성을 고민하는데 있어 누구에게나 도움이 될 만한 책입니다.

4) 이회, <기출변형가족>
이 책은 1983년생 법원 공무원인 미혼 남성과 보육원에서 자란 13살 소년이 맺은 관계의 기록입니다. 후원자에서 시작해 동거인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는 한 소년의 성장담이자 저자의 30대를 관통하는 삶이기도 합니다. 늘 마음속으로나마 비슷한 꿈을 갖고 있기에 따뜻한 결말을 기대하며 책을 펼쳤지만 끝은 지극히 현실적입니다.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이래저래 많은 과제를 남기는 이 책은 특히 미혼과 1인 가구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가족형태를 꿈꾸는 사람들이 한번쯤 펼쳐 봐도 좋을 것 같은 책입니다. 저자의 글맛도 좋아 앉은 자리에서 새벽까지 다 읽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열권의 책 중 가장 최신작이며 가장 덜 유명한 작가의 책이지만 그 재미와 의미는 결코 다른 추천서들에 뒤지지 않습니다.

5) 스티븐 킹, <유혹하는 글쓰기>
세계적인 미스터리 작가가 쓴 글쓰기에 대한 책으로 읽히는 글을 쓰고 싶은 사람들에겐 보석과도 같은 조언들을 담고 있습니다. 물론 단기간에 글쓰기 실력을 키울 수 있는 꿀팁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지극히 원론적인, 그래서 우리가 간과하는 부분들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있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박사과정에 있을 때 사회학과의 ‘글쓰기 세미나’의 주교재 중 하나였습니다. 분야와 무관하게 읽히는 글들의 공유된 속성은 존재한다고 할까요. 저자의 풍부한 글쓰기 경험이 사례로 담겨 있어 에세이로 읽어도 충분한 재미를 주는 책입니다.

6) 세스 스티븐스 다비도위츠의 <데이터는 어떻게 인생의 무기가 되는가>
바야흐로 데이터의 시대입니다. 점차 우리의 일상이 데이터로 기록되고, 다시 일상을 주도하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수많은 데이터들이 분석되어 우리 앞에 ‘진실’이라며 주어지는 오늘날, 데이터를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는지, 그것을 조금은 쉬운 언어로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지에 대한 감을 갖는 것은 무척 중요합니다. <데이터는 어떻게 인생의 무기가 되는가>는 이러한 통찰력을 주는 사례들로 가득 차있습니다. 세상만사를 데이터로 읽어내는 즐거움을 느끼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아울러 사람들을 만났을 때 여기 나온 사례 몇 개만 이야기해도 상당히 똑똑해 보일 수 있습니다.

7) 은희경, <새의 선물>
2001년 여름에 이 소설을 읽었습니다. 한 여자의,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했던 1969년과 소설이 출간되었던 해인 1995년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입니다. 솔직히 정확한 줄거리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다만 빠져들어 읽었던 그 순간의 기억만은 또렷합니다. 사실 이 책이 일종의 ‘인생 책’으로 남은 이유는 책과 함께 했던 추억 때문입니다. 2002년 초여름, 비수기인 용평의 한 콘도에 엎드려 이승환 7집에 실린 ‘Christmas Wishes’(여름에 크리스마스 노래를 듣는 감성이란!)를 무한 반복해 들으며 읽었던 책, 그때 함께 했으나 이제는 연락이 닿지 않는 친구는 지금 잘 지내고 있을지 궁금합니다. 독서경험에 의미를 불어넣어줄 사람, 공간, 시간을 찾는 것도 지나고 나면 꽤 괜찮은 추억으로 남는 것 같습니다.

8) 고원정, <빙벽>
아직 군사주의 문화가 사회에 강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던 중학교 1학년 시절(1994년)에 접하게 된 책으로 1960년대 제주도와 1980년대 초 군사정권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어른들이 읽는 아홉 권짜리 대하소설을 꼬마가 무협지의 속도로 읽어낼 수 있었을 만큼 굉장히 흡입력 있는 책입니다. 요즘은 거의 활동을 하고 있지 않지만 작가는 1990년대엔 여러 권의 베스트셀러를 썼고,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를 진행할 만큼 인기가 많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이 다루고 있는 한국 현대사에 대한 관심이 많은 때여서 읽게 되었는데 덕분에 개인과 조직(군대)의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의 부작용은 이때부터 군에 입대할 때까지 약 9년여 동안 군대공포증에 시달려야 했다는 것입니다. <토지>나 <장길산>, <객주> 같은 대하소설에 비해 문학적 완성도가 높진 않지만 제 기억 속에선 더 강렬하게 남아 있습니다.

9) 김우창의 <지상의 척도>
문학평론가인 김우창의 첫 책이자 이분을 이야기 할 때면 늘 회자되는 <궁핍한 시대의 시인>이 아닌 두 번째 저서인 이 책을 더 좋아하는 이유는 그곳에 실린 한 편의 글 때문입니다. '예술과 초월적 차원'이란 글의 첫 두 페이지는 하나의 글로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문장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김우창의 글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미문도 아닙니다. 오히려 모래를 씹는 것 같은 서걱거림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읽다보면 그 사유의 깊이에 푹 빠지고 맙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아니 대학에 와서도 잠깐 동안 제 꿈은 문학평론가였습니다. 이 책을 읽고 평론가가 되어보고 싶다는 꿈을 완전히 접었습니다. 영원히 이런 글은 쓸 수 없을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 고마운 책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온전히 독자로만 다가갈 때, 책을 읽는 행복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10) 장영희, <내 생애 단 한번>
2000년대 초만 해도 집에서는 인터넷 속도가 느려서 수강신청을 위해 중앙전산실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인기강좌의 경우 2-3분이면 마감이 되기에 ‘속도전’은 필수였습니다. 저도 소위 인기강좌를 한번 수강해보기 위해서 결국 중앙전산실 앞에서 밤을 지새우겠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2001년 겨울, 저녁 7시 반쯤 전산실 정문 앞에 섰고 몇 시간이 지나자 어림잡아도 500명은 넘는 사람들이 제 뒤로 서 있었습니다. 그 뿌듯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죠. 아침이 오길 기다리며 가로등 불빛에 기대어 봤던 책이 바로 장영희의 <내 생애 단 한번>입니다. 어릴 적 소아마비에 걸려 장애의 편견을 견디고, 넘어서며 번역가이자 손꼽히는 에세이스트가 된 저자(영문학 교수)의 글은 무척 담백합니다. 어깨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 있지 않다고 할까요, 아니면 솔직하다고 할까요. 책의 뒷부분에 실린 ‘킹콩의 눈물’을 읽으며 눈물을 찔끔찔끔 흘렸던 스무 살을 떠올려봅니다. 책장을 덮고 감동에 젖어있을 때 중앙전산실의 문이 열렸습니다. 저는 일등으로 달려 들어갔으나 처음 고른 컴퓨터가 먹통이라 다른 컴퓨터로 옮기는 사이 이미 수강하고자 했던 인기강좌는 마감이 되어버렸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책상 위에 올려놓은 휴대폰도 누군가 훔쳐가 버렸습니다. 이 책이 아니었다면 최악으로 남았을 그날의 기억은, 이 책 덕분에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습니다. 아직도 꼭 5권은 연구실에 ‘상비’하며, 삶의 고단함을 호소하러 찾아오는 학생들에게 한권씩 안겨주는 책이기도 합니다.

| 6. 맺음말
처음 의도와는 달리 ‘의식의 흐름’과도 같은 글이 되어버렸습니다. 요청받은 분량의 1.5배가 된 것은 덤입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지만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하나입니다. 뭐든 읽으시고, 가능하면 다양하게 읽으시길 바랍니다.
글을 쓰면서 언젠가는 저도 서울대 중앙도서관의 책장에 꽂을 수 있는, 그래서 누군가 꺼내볼 수 있는 책을 쓰고 싶다는 바람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새로운 도전이자 꿈 하나를 부끄럽게 적으며 글을 닫습니다.
정인관 숭실대학교 정보사회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사회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예일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디지털 불평등, 사회이동, 교육사회학, 양적연구방법론 등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