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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의 서재

우리 사회 각 분야 지식인의 마음 속 서재에 꽂혀 있는 다양한 책들을 소개합니다.

주검을 부검하며 삶을 읽는, 어느 법의학자의 서재 작성일 : 2026-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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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의 서재
서울대학교 빅데이터 기반 지식정보플랫폼 LikeSNU에서는 우리 사회 각 분야 지식인의 마음 속 서재에 꽂혀 있는 다양한 책들을 소개합니다. 두 번째 지식인의 서재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법의학교실 유성호 교수님의 서재를 소개합니다.

유성호 교수님 소개

유성호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법의학교실 교수

 

연구분야

법의학

 

저서

-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

- 「법의학자 유성호의 유언노트 」

- 「시체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

- 「법의학」

- 「죽음학교실 」

 

 

  경력

-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석사

-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박사

- 미국 NIH 박사후 연구원

- 서울대학교 교수

- 서울대학교 의학도서관장

- 대한의학회 법제이사

- 대한법의학회 윤리이사

- 대검찰청 자문위원

- 서울고등법원 및 서울중앙지방법원 자문위원

 

 

ㅣ프롤로그

2025년 단풍이 아름다운 만추의 어느 날, “법의학 전문가의 시선으로 좋아하는 책들을 지식인의 서재라는 기고 형태로 소개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문득 웃음이 났습니다법의학자교수, 지식인독서가이 네 단어가 한 문장 안에 나란히 붙어 있는 풍경이 낯설었기 때문입니다저는 죽음의 흔적을 읽는 사람이지삶을 경영하는 멋진 지식인의 모습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 단어들이 제게 주는 묘한 설렘도 있었습니다. ‘죽음이라는 무거운 세계 속에서 살아가면서책이라는 또 다른 세계를 통해 균형을 유지해온 삶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법의학은 인간의 최후를 해석하는 학문입니다그 최후의 순간을 마주하면서저는 역설적이게도 책을 통해 더 완강하게에 기대어 왔습니다.
책을 펼치고손끝으로 종이를 만지고빛의 각도에 따라 글자가 달리 보이는 순간마다나는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됩니다.

 

이 글은 그런 의미에서죽음을 통해 삶을 배우는 직업을 가진 한 사람이 책을 통해 어떻게 균형을 잡아왔는지에 대한 조용한 기록입니다.

 

 

ㅣ서점, 종이책 그리고 삶의 온도

저는 몇 번의 시도 끝에 이북 리더기를 모두 타인에게 넘겼습니다.
부검대 위의 냉기 속에서 하루를 보내다 보면저녁에 집으로 돌아와 따뜻한 종이책을 펼치는 일이야 말로 제 삶의 온도를 회복시키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시신을 만질 때 느껴지는온도 차는 의학적으로는 사망시각 추정의 단서이지만인간적으로는 삶과 죽음을 가르는 가장 직관적 감각입니다.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광택 없는 종이간혹 느껴지는 눌린 활자의 요철(凹凸), 오래된 책장 냄새 같은 것들은 디지털 화면이 결코 대체할 수 없는살아 있는 질감을 줍니다.

 

종이책을 읽는다는 것은 결국 사라질 수밖에 없는 인간의 감각을 기록하는 일입니다.
삶을 다루는 가장 감각적 방식.
따라서 저에게 독서는 단순한 지식 축적이 아니라 감각의 재생입니다법의학이 죽음의 사실을 다룬다면독서는 삶의 감각을 되돌리는 일입니다.

 

ㅣ도서관, 그리고 죽음과 삶 사이의 작은 쉼표

저는 이번 가을부터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도서관장을 맡게 되었습니다근사하게 새로 지어진 의학 도서관에 업무 차 들를 때면저는 종종 서가 사이에서 가만히 서 있는 저 자신을 발견합니다부검실에서 나온 직후에도근거 없는 위안처럼 책을 쳐다보게 됩니다왜일까요?

 

시신은 죽음의 이야기를 남기고책은 삶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도서관은 제게 죽음과 삶 사이의 숨구멍 같은 존재입니다.

 

이제는 아들뻘의 학생들의 대출기록에서뇌 과학불안마음인간관계죽음” 같은 키워드를 볼 때마다사회가 빠르게 변화하는 만큼 젊은 세대가인간 답게 사는 법을 더 치열하게 찾고 있다는 사실을 느낍니다.

법의학적 분석이 삶의 민 낯을 드러낸다면, 책 읽기는 그 민 낯을 이해하고 위로하는 작업입니다.

 

ㅣ법의학자가 사랑한 10권의 책

-삶을 더 깊게 바라보게 만든 책들-

 

바닷마을 다이어리

바닷마을 다이어리

요시다 아키미
애니북스 (2009)

요시다 아키미의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이미 영화로도 유명해져 많은 분들이 한 번 정도는 이름을 접해 보셨을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만화지만 지극히 문학적인 서사를 가진 작품으로, 저도 처음에는 단순한 가족 이야기 정도로 가볍게 펼쳤습니다. 그러다 최근 관계와 돌봄, 그리고 ‘가족의 형태’에 대한 글을 쓰는 과정에서 다시 읽게 되었는데, 예전과는 전혀 다른 무게로 이야기가 다가오더군요.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중심에는 “혈연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이 있습니다. 어느 날 갑작스럽게 나타난 13살의 이복동생 스즈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세 자매가 받아들이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작가는 이 관계를 과장하거나 극단적으로 그리지 않습니다. 대신 아주 조심스럽게, 일상의 대화, 집 밥, 바닷바람, 사소한 사건들 속에서 인간 사이의 온도와 거리를 천천히 보여줍니다. 

이 작품이 흥미로운 이유는, 가족을 이상화하지도, 특정한 형태로 규정하지도 않는다는 점입니다. 요시다 아키미가 보여주는 가족은 완벽하지 않고, 어설프고, 흔들리고 때로는 실망스럽습니다. 그럼에도 서로에게 작은 자리를 내어주는 사람들입니다. 즉 ‘가족’이라는 단어가 사회, 제도, 혈연의 문제를 넘어 인간이 서로에게 어떤 방식으로 의지가 되고, 책임을 나누고, 삶의 일부를 함께 견디는가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됩니다.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돌봄의 윤리”입니다. 자매들은 특별히 도덕적이어서 스즈를 받아들인 것이 아닙니다. 단지 눈앞의 한 아이가 홀로 남겨진 상황에서 ‘그냥 지나치지 못했을 뿐’입니다. 이 지점에서 작품은 의외로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돌봄은 선택인가, 혹은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책임인가?”

오늘날 1인 가구, 비혼, 비혈연 가족이 늘어나고, 돌봄의 경계가 흐려진 사회에서 이 질문은 더욱 현실적인 의미를 갖게 될 것입니다. 우리 한국 사회가 여전히 ‘가족’을 혈연 중심으로 규정하는 문화 안에서 이 만화는 가족은 조건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방식으로 규정된다는 의미를 전달해 주고 있습니다.

사실 스즈가 자라면서 겪는 혼란과 성장은, 사실상 누구나 겪는 ‘정체성의 수선 과정’입니다. 자매들은 스즈에게 방향을 강요하지 않고 스즈가 넘어질 때 곁에 서 있어줄 뿐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혈연보다 더 깊은 신뢰를 만들어줍니다.

책을 덮고 나면, 이 작품이 보여주는 가족은 특별한 결단이나 인기 드라마에서 보이는 엄청난 반전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작은 식사, 함께 걷는 길, 계절의 변화,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우리는 천천히 가족이 됩니다. 누군가에게 기대고 누군가를 받아들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그 과정이 얼마나 조용하면서도 강력한 힘을 갖는지를 알려주는 작품입니다. 이 만화책이 마음에 들었다면 아직 완결이 나지 않았지만 우미노 치카의 『3월의 라이온』을 읽어 보기를 권합니다.

 

→ 유성호 교수님이 건네는 또 다른 도서:  『3월의 라이온』

 

 

바닷마을 다이어리

스토너

존 윌리엄스
알에이치코리아 (2020)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는 처음 보면 매우 조용하고 단출한 소설처럼 보이지만, 읽고 나면 묵직한 여운이 오래 남는 작품입니다. 주인공 윌리엄 스토너의 삶은 극적인 성공도, 비극적 추락도 없지만, 그의 평범한 생애가 지닌 고요한 진실 때문에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소설로 자리 잡았습니다. 많은 분들도 아마 이 작품을 읽으며 “나도 살아내고 있을 뿐인 삶의 어느 순간을 마주한 듯한 느낌”을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스토너의 삶을 관통하는 핵심 질문은 아마도 성공이 아닌, 존엄하게 살아낸 삶이란 무엇인가일 것입니다. 스토너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부유하지 않고, 특별한 권력을 쥐지 않으며, 사회적으로 큰 업적을 남기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그는 책을 발견한 순간, 그리고 학문을 사랑하게 된 순간, 자신의 삶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조용하게 결정합니다.
이 작품의 진짜 주제는 ‘성취’가 아니라, 자신의 작은 신념을 한평생 붙드는 존엄의 방식에 가깝습니다. 이 소설의 가장 인상적인 점은, 그 무엇도 극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삶에서 오히려 깊은 감정이 흘러나온다는 사실입니다. 스토너는 행복하지도, 완전히 불행하지도 않은 상태로 생을 마칩니다. ‘손가락에서 힘이 빠지자 책이 고요히 정지한 그의 몸 위를 천천히, 그러다가 점점 빨리 움직여서 방의 침묵 속으로 떨어졌다.’ 그 마지막 순간에 느껴지는 감정은 패배나 공허가 아니라, 나는 나의 삶을 살았다라는 조용한 만족이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끊임없이 스펙, 커리어, 성취를 요구받는 시대 속에서, 스토너의 삶은 법의학을 하는 저에게 사회적 성공을 이루지 못해도, 타인에게 특별한 인정을 받지 않아도, 삶을 정직하게 마주하고 자신만의 조용한 기쁨을 지킨다면 그 자체로 충분하다는 메시지를 전해주었습니다. 우리의 삶이 비록 반짝이지 않아도, 충실한 삶은 충분히 빛날 수 있습니다. 

이 책과 함께 추천작으로 고민했던 책은 오에 겐자부로의 『개인적인 체험』이었습니다. 한 인간이 자신의 삶과 책임에 정직하게 마주볼 수 있는 또 하나의 훌륭한 책입니다. 

 

→ 유성호 교수님이 건네는 또 다른 도서:  『개인적인 체험』

 

 

백년의 고독

백년의 고독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민음사 (2000)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은 세계문학의 고전으로 자리 잡은 작품이지만, 읽을 때마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내는 독특한 소설입니다. ‘기억’이라는 주제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작품에서 묘하게 낯설면서도 익숙한 감정을 발견하게 됩니다. 특히 애니메이션 코코에서 다루는 “기억되지 않는 존재는 두 번 죽는다”는 메시지를 떠올린다면, 마르케스가 구축한 부엔디아 가문의 세계가 훨씬 더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백년의 고독』에 등장하는 부엔디아 가문의 100년은 인간이 똑같은 실수를 세대를 넘어 되풀이하는 원형적 구조를 보여줍니다. 이름이 반복되고, 선택이 반복되고, 갈등이 반복되는 이유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기억의 부재입니다. 마르케스가 말하는 ‘고독’은 쓸쓸함이 아니라, 기억이 단절되고 관계가 해체된 공동체가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구조적 고립입니다.


이는 애니메이션 코코에서 가족의 기억 속에서조차 지워진 존재가 ‘최종적 소멸’에 이르는 장면과도 깊게 연결됩니다. 기억되지 않으면 존재는 유지될 수 없으며, 존재가 사라지면 같은 실수와 비극은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작품의 핵심은, 부엔디아 가문의 몰락이 특별한 사건 때문이 아니라 기록되지 않은 역사와 단절된 관계의 누적적 결과라는 점입니다. 서로에게 도달하지 못한 삶의 파편들, 전달되지 못한 이야기들, 잊혀진 고통이 세대를 거치며 형태만 달리해 되풀이됩니다.
이 비극의 구조는 급변하는 사회에서 점차 고립되어 가는 현대인의 모습, 기억의 전승이 약해지고 관계가 단절되는 오늘의 현실과도 닮아 있습니다. 책을 덮으면서 고독은 끝나지 않을 것처럼 느껴집니다. 우리가 서로를 기억하지 않는다면. 

 

만약 이 책이 당신의 가슴에 와 닿았다면 사라마구의 『눈 먼 자들의 도시』를 추천합니다마르케스와 또 다른 사회와 인간 본성의 고민을 던져주는 명작입니다만약 애니메이션 코코를 보시지 않았다면 이 역시 꼭 보시기를 권합니다

 

→ 유성호 교수님이 건네는 또 다른 작품 :  『눈 먼 자들의 도시』

 

슬램덩크

슬램덩크

이노우에 다케히코
대원씨아이 (2007) 

슬램덩크는 단순한 스포츠 만화를 넘어서 세대와 국적을 초월해 꾸준히 사랑받는 작품입니다. 농구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그 안에는 성장, 동료, 한계의 극복, 자기 발견이라는 보편적 주제가 깊이 자리 잡고 있어, 독자가 어느 시점에서 읽든 다른 감정으로 다가오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아마 누구나 청춘의 어느 순간, 슬램덩크 속 인물들의 얼굴에서 자기 자신을 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어떤 분은 정대만에게 또 다른 이는 강백호에게. 

주인공 강백호는 농구에 대한 재능보다 ‘인정받고 싶다’는 충동, ‘할 수 있을까’라는 불안, 실패에 대한 두려움 같은 아주 인간적인 감정들로 출발합니다. 하지만 그가 농구를 통해 조금씩 변화해 가는 과정은 기술적 성장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대면하는 성장에 더 가깝습니다. “왼손은 거들 뿐”이라는 상징적 장면도 결국, 화려한 스킬이 아니라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적절히 활용하는 강백호의 성장과정을 의미합니다.

그럼에도 작품의 가장 강렬한 부분은 강백호 개인의 성장보다도 ‘팀’이라는 공동체가 만들어내는 에너지입니다. 서로 다른 과거와 성격, 동기를 가진 선수들이 같은 목표를 향해 움직이는 순간, 그들의 서사는 단순한 스포츠 경기를 넘어 관계와 협력의 가치를 보여주는 이야기로 확장됩니다. 특히 송태섭의 고요한 의지, 정대만의 절실함, 서태웅의 고독한 재능, 채치수의 책임감은 모두 다른 방식의 성장 서사를 대표합니다.

『슬램덩크』가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이유는, 그 성장의 방식이 완벽함이 아니라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과정으로 그려지기 때문입니다. 보통의 만화라면 해피엔딩을 그려낼 이야기의 구도이지만 이 작품은 오히려 실패, 좌절, 부상, 한계 같은 요소를 그대로 드러내며, 그 안에서 다시 출발하는 인물들을 마지막 패배를 통해 보여줍니다. 

그래서 이 만화는 단순한 ‘승리의 이야기’가 아니라 어떤 순간에 최선을 다해 살아 있었던 청춘의 기록으로 남습니다. 전국대회에서의 마지막 경기 결과보다 과정이 더 중요했던 그 순간은, 많은 이들의 마음에 오래 남아 있는 장면입니다.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성공 여부보다는 한 순간을 온전히 살아낸 우리의 시간이 얼마나 가슴 속 깊이 찬란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아다치 미츠루, 『H2』를 강력히 추천합니다. 『슬램덩크』가 뜨거운 에너지로 기억되는 청춘이라면, 『H2』는 나중에 문득 떠올렸을 때 가슴 한쪽이 조금은 따뜻해지고 조금은 처연해지는 청춘의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 유성호 교수님이 건네는 또 다른 도서:  『H2』

 

 

슬램덩크

눈물을 마시는 새

이영도
황금가지 (2003) 

눈물을 마시는 새는 한국 장르문학의 경계를 새롭게 연 작품으로, 단순한 판타지 서사를 넘어 인간과 공동체, 기억과 폭력의 구조를 깊이 탐구하는 드문 명작입니다. 네 종족—레콘, 인간, 도깨비, 나가—의 세계를 정교하게 쌓아 올렸지만, 그 안에 담긴 핵심은 종족 간 갈등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적 감정들, 특히 두려움, 기억, 오해, 구원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독자가 어느 시점에서 읽든 전혀 다른 질문을 던지는 텍스트이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케이건 드라카의 고독에서, 또 다른 이는 레콘의 명예나 도깨비의 ‘해석’이라는 잔혹한 논리 속에서 자기 삶의 모습을 발견하곤 합니다.

작품 전체에 흐르는 가장 강력한 감정은 ‘두려움’입니다. 레콘은 두려움 속에서 명예를 지키고, 인간은 자신들의 두려움을 신화와 이념으로 포장하며, 나가는 고립을 통해 두려움을 외면합니다. 이 두려움이 곧 폭력의 씨앗이 되고, 거대한 역사의 비극을 만들어내는 동력이 됩니다. 특히 인간들이 믿고 따르는 진실이 사실은 왜곡된 기억과 조작된 이야기였다는 설정은, 기억이 어떻게 지워지고 다시 쓰이며 폭력을 재생산하는지 보여주는 강력한 은유입니다.

그 가운데 돋보이는 것은 ‘타자화의 과정’입니다. 서로 다른 존재를 규정하고 하나의 속성으로 고정시키는 순간 폭력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작품은 끊임없이 드러냅니다. 네 종족의 특징처럼 보이는 것들도 결국 역사적 상처와 누적된 오해가 만들어낸 결과일 뿐, 본성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 작품은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드러냅니다. 법의학자의 시선으로 읽자면, 『눈물을 마시는 새』는 사건의 초기 서사—오류, 편견, 왜곡—가 이후의 판단 전체를 흔드는 현실의 구조와도 유사한 면모를 보여줍니다. 기억이 잘못 기록되면 공동체 전체가 같은 비극을 반복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이 소설의 가장 인상적인 면은 개별 캐릭터가 지닌 인간적 서사입니다. 케이건 드라카의 상실과 집착, 레콘의 장엄한 명예, 도깨비의 잔인한 논리, 나가의 깊은 고독은 판타지 속에서 오히려 더 인간적입니다. 서로 다른 존재들이 상처와 의무, 기억을 끌어안은 채 나아가는 과정은 장르를 넘어 보편적 울림을 줍니다.

 

『눈물을 마시는 새』가 일부 독자에게 명작이라고 평가되는 이유는 완벽한 세계를 구축했기 때문이 아니라 불완전한 존재들이 어떻게 살아남고 서로를 이해하려 하는지를 집요하게 파고들기 때문입니다이는 단순한 모험담이 아니라 두려움과 잘못된 기억이 만들어낸 세계 속에서 각자가 어떻게 자기 길을 찾는지에 대한 서사입니다.

 

저는 이 작품을 강력히 추천합니다반지의 제왕과 같은 스케일은 아니지만 기억과 두려움관계와 책임이라는 인간의 근원적 문제를 가장 드라마틱한 방식으로 보여주기 때문입니다만약 이 책이 마음에 드셨다면 후속작인 이영도『피를 마시는 새』를 강력히 추천드립니다케이건 드라카 이후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 유성호 교수님이 건네는 또 다른 도서:  『피를 마시는 새』

 

 

슬램덩크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
청아 (1989)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단순한 회고록이나 전쟁 기록을 넘어, 인간이 가장 비인간적인 조건 속에서도 어떻게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지를 탐구하는 철학적 보고입니다. 저자는 아우슈비츠와 여러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경험을 바탕으로, 인간이 고통 속에서 어떻게 자기 존재를 지켜낼 수 있는지, 그리고 절망의 한복판에서 무엇이 인간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지를 정면으로 묻습니다.

프랭클은 극한 상황을 견디게 하는 힘이 ‘쾌락’도 아니고 ‘권력’도 아니라 의미를 향한 의지라고 말합니다. 수용소에서 모든 것을 빼앗긴 사람들도 단 한 가지, “이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라는 태도만큼은 스스로 선택할 수 있었고, 이 선택이 그들의 생존 여부를 가른 핵심 요소였다는 사실은 지금 읽어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기억에서, 누군가는 자신이 완성해야 한다고 믿었던 사명에서, 또 누군가는 인간으로 남아 있으려는 작은 행동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합니다.

이 책의 강점은 프랭클이 고통을 미화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는 수용소의 참혹함을 차분히 있는 그대로 서술하면서도, 그 안에서 인간 존엄이 어떻게 파괴되고 어떻게 다시 붙들리는지를 냉철하게 분석합니다. 타인의 삶과 죽음, 그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마지막 선택의 흔적들은 결국 인간이 어떻게 의미를 구축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기도 합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가 시대를 넘어 독자들에게 계속 사랑받는 이유는,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이 결코 특정한 시대나 특정한 사건에만 해당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삶의 어느 순간에는 감당하기 힘든 고통 앞에 서게 되고, 그때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피할 수 없습니다. 프랭클의 대답은 단순하지만 단단합니다. 삶의 의미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고통의 순간에도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저는 가끔 제 인생의 의미를 찾지 못할 것이라는 공포에 휩싸이기도 합니다. 그럴 땐 이 책을 다시 읽곤 합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절망의 한복판에서도 인간이 어떻게 존엄을 지킬 수 있는지 또한 인생의 의미 추구 그 자체의 노력에 대한 희망을 목격하게 됩니다. 또한 고통을 바라보는 태도 하나가 삶 전체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은 오늘의 우리에게도 충분히 적용될 수 있다고 봅니다.

 

죽음의 수용소를 읽은 후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읽기를 권합니다. 프랭클이 “극한 상황에서도 존엄성을 갖는 인간”을 말한다면, 아렌트는 “극한 상황에서도 생각하지 않는 인간”이 벌이는 악을 이야기해줍니다.

 

→ 유성호 교수님이 건네는 또 다른 도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슬램덩크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칼 세이건
사이언스북스 (2022)

칼 세이건의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은 비이성적인 믿음, 음모론, 그리고 과학적 문맹이 만연한 현대 사회에 던지는 준엄한 경고입니다. 이 책은 미신, 사이비 과학,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맹목적인 신념이 왜 위험한지 파헤치며, 이에 맞설 ‘비판적 사고’의 중요성을 역설합니다. 세이건은 단순히 비과학적인 주장을 조롱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복잡한 과학적 사실보다 신비롭고 자극적인 음모론에 현혹되는 사회적, 심리적 기저 원인을 깊이 탐구합니다.

그가 가장 강력하게 우려한 지점은 “과학의 부재가 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한다”는 통찰입니다. 검증되지 않은 정보, 공포를 자극하는 가짜 뉴스, 과장된 주장이 여론을 지배하게 되면 합리적인 의사 결정 과정이 마비되고 결국 공동체가 무너질 수 있습니다. 이는 정보의 과부하와 사회적 분열을 겪는 오늘날의 현실과 정확히 맞닿아 있는 예언과도 같습니다. 

세이건은 이러한 위험 속에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강력한 도구로 ‘헛소리를 구별하기 위한 사고의 기술’을 제시합니다. 그가 예견한 세상은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로 완성된 “유령이 출몰하는 세상”의 완벽한 재현입니다. 과학적 사실보다 자극적인 가십이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음모론이 사회를 좀먹는 현실에서 이 책은 단순한 과학 교양서를 넘어,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아가는 지적 생존을 위한 필수 안내서라 할 수 있습니다.

책 전반을 관통하는 그의 메시지는 묵직한 울림을 줍니다.


“우리는 과학을 이해하지 못한 채, 과학기술 문명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것은 위험한 조합이다.” 이 책은 그 위험천만한 조합 속에서 합리적인 사고를 유지하려는 모든 이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지적 방어 체계가 되어줄 것입니다. 혹시 이 책을 읽고 더 자세하게 이 주제에 대해 공부하고 싶은 분에게 조 피에르의 『집단망상』 이라는 책을 권해드립니다. 칼 세이건의 문제 의식을 더 발전된 뇌과학과 정신의학으로 설명하는 수작입니다.

 

→ 유성호 교수님이 건네는 또 다른 도서:  『집단망상』

 

 

백야행

백야행

히가시노 게이고
재인 (2016) 

히가시노 게이고의 『백야행』은 범죄소설의 형식을 빌리고 있지만, 실제로는 인간의 상처가 어떻게 운명이 되고, 그 운명이 다시 고독을 낳는가를 집요하게 탐구하는 심리적 비극에 가깝습니다. 사건의 퍼즐을 맞추는 재미가 분명 존재하지만, 이 작품의 핵심은 범죄의 진범을 찾는 데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소설은 “어린 시절의 어둠이 얼마나 길게, 얼마나 잔혹하게 한 사람의 삶을 지배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독자에게 던집니다.


두 주인공의 삶은 어린 시절 겪은 폭력과 상처에서 이미 방향이 정해져 버린 듯합니다. 그 사건은 단순한 트라우마가 아니라, 그들이 따뜻함을 체험할 기회를 영원히 앗아간 기점이었습니다. 히가시노는 이들을 선악으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 택했던 방식이 얼마나 비틀리고, 동시에 얼마나 슬픈가를 보여줄 뿐입니다. 그래서 『백야행』은 악인의 탄생을 다룬 소설이라기보다, 빛을 모른 채 자라난 존재들이 어떻게 세상을 버텨내는가를 기록한 잔혹한 성장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법의학자는 현실에서 『백야행』의 주인공과 비슷한 이들을 종종 마주하게 됩니다. 끔찍한 사건을 앞에 두고 “왜 이런 범죄를 저질렀는가”를 묻지만, 어느 순간 “그는 왜 다른 선택지를 갖지 못했는가”라는 더 깊은 질문을 하게 되는 경우입니다. 두 주인공 역시 범죄를 저지른 ‘악인’이 아니라, 상처와 결핍, 고립, 잘못된 보호의 누적이 만들어낸 구조적 비극의 산물에 가깝습니다. 범죄의 기원은 개인의 도덕성보다 환경, 관계의 단절, 기억의 왜곡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히가시노는 문학적으로 강렬하게 제시합니다.


이 소설의 힘은 이런 구조적 독해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서늘한 분위기, 절제된 문장, 여백과 암시로 이루어진 서사 방식은 독자로 하여금 “말해지지 않은 이야기”를 상상하게 만듭니다. 두 주인공이 거의 마주치지 않음에도 서로의 그림자처럼 얽혀 살아가는 방식은 관계의 기묘함과 긴장감을 만들어내며 작품을 끝까지 끌고 갑니다.

결국 『백야행』은 범죄의 미스터리를 푸는 소설이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고독을 견디는가에 대한 차갑고도 아름다운 탐구로 귀결됩니다. 책장을 덮고 난 뒤에도 한동안 두 주인공이 걸어갔던 ‘빛 없는 길’이 마음속을 오래 서늘하게 합니다. 그 길은 비극이지만 동시에 인간의 연약함과 작은 희망의 가능성까지 생각하게 만드는 강력한 서사적 경험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또 다른 명작을 찾고 있다면, 『용의자 X의 헌신』을 꼭 책으로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이 두 작품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인간의 사랑과 죄, 헌신과 절망을 탐구한 깊이 있는 쌍둥이 같은 작품입니다.

 

→ 유성호 교수님이 건네는 또 다른 도서:  『용의자 X의 헌신』

 

슬램덩크

어떻게 죽을 것인가

아톨 가완디
부키 (2015) 

하버드 의대의 외과의사이자 공중보건학자인 아툴 가완디가 쓴 이 책 역시 이미 너무나 널리 알려져 있어 많은 분들이 한번쯤 들어 보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저 또한 2015년 국내 번역본이 처음 나왔을 때 큰 기대를 가지고 읽었고(참고로 원서도 문장이 명료하고 간결해 영어 읽기에 아주 좋습니다), 진심으로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가완디는 ‘죽음을 의학의 실패로만 여기는 관점’이 어떻게 현대 의학과 의료현장의 문화를 왜곡시켜 왔는지, 그리고 이로 인해 인간의 마지막 순간이 얼마나 불필요하게 고통스럽고 비인간적인 방식으로 소모되어왔는지를 생생한 임상사례들과 자신의 실패담을 통해 고백하듯 그려냅니다. 특히 말기 환자에게 끝없이 시도되는 연명치료, 환자 의사를 묻지 않은 처치, 가족의 불안과 의료진의 책임감이 뒤엉켜 만든 ‘과잉의료’의 문제를 날카롭게 들여다보는 그의 시선은 그 자체로 참담하면서도 통렬합니다.

처음 읽었을 때는 의학적·윤리적 통찰이 흥미롭게 다가왔는데, 다시 읽으면서 좀 더 무거운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제가 매일 사망 원인을 해석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 살아가다 보니, “어떻게 죽는가”라는 문제는 단순히 말기 환자의 개인적 선택을 넘어 우리 사회가 어떤 ‘죽음의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는지 묻는 질문처럼 느껴졌습니다.

특히 초고령사회로 들어선 오늘의 한국 사회에서, 병원, 가정, 요양시설, 법, 제도 등이 뒤섞인 임종의 풍경은 더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 책이 던지는 메시지—죽음은 패배가 아니라 삶의 완성이다, 그리고 그 완성의 조건은 의료가 아니라 인간의 가치다—는 누구에게나 다시 한번 곱씹어볼 만한 울림을 줍니다.

 

‘죽음의 순간을 인간 답게 만드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그리고 죽음을 실제로 다루는 저 같은 의학도 그리고 생명과학을 전공하는 이들에게도 여전히 유용하고 필요한 책입니다. 이 책을 읽고 죽음과 관련된 진중한 의사의 에세이를 원하신다면 서울대학교병원 김범석 교수의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를 권유드립니다.

 

→ 유성호 교수님이 건네는 또 다른 도서: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죄와 벌

죄와 벌

도스토예프스키
문예 (2013)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은 이미 너무나 유명한 고전이라 많은 분들이 한번쯤 읽어봤거나, 적어도 제목 정도는 익히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저 역시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에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의 전율과 감동을 잊지 못합니다. 다만 그때는 이 작품이 던지는 윤리적 질문의 깊이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몇 번을 다시 읽을 때마다 이전과는 다른 훨씬 더 복잡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게 되었습니다.

『죄와 벌』의 중심에는 “도덕과 범죄 사이의 균열”이라는 오래된 질문이 자리합니다.
도스토옙스키는 라스콜리니코프라는 인물을 통해, 인간이 흔히 말하는 ‘정당한 목적’이 실제로는 얼마나 위험한 자기기만이 될 수 있는지를 정면으로 묻습니다. 주인공은 스스로를 “비범한 인간”이라고 규정하며, 사회의 부정의나 도덕적 허구를 넘어서는 존재라고 여겼지만, 살인을 저지르는 순간 그 모든 이론적 정당화는 허물어지고, 남는 것은 죄책감과 자기파괴 뿐임을 보여줍니다.

이 소설의 가장 뛰어난 부분은, 범죄의 행위 자체보다 범죄 이후 인간이 어떻게 무너져 가는가를 집요하게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라스콜리니코프의 불면, 불안, 자기합리화, 도피와 혼란, 그리고 결국 자신이 만들어낸 논리가 더 이상 자신을 지탱해주지 못하는 지점까지의 과정은, 심리학적 소설을 넘어 인간 내면의 어두운 구조를 부검한 기록에 가깝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작품이 ‘범죄의 처벌’보다 ‘죄의 자각과 고백’이 인간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가에 더 집중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도스토옙스키는 형벌보다 더 강력한 것은 결국 인간 내부의 양심이며, 그 양심이 제대로 작동할 때 비로소 인간은 다시 사회와 자신에게로 돌아올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 지점은 오늘날 법학·범죄심리학·윤리학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논쟁으로 남아 있다고 봅니다.

 

저는 이 책이 단지 19세기 러시아의 한 살인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을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사회적 불평등, 도덕적 무기력, 경제적 취약성, 그리고 사회로부터의 고립감—라스콜리니코프가 범죄에 이르는 심리적 배경은 2020년대의 한국 사회에서도 익숙한 키워드들입니다. 인간이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그 고립 속에서 극단적 판단을 내리는 과정은 지금 우리의 사회적 풍경과도 겹쳐 보였습니다. 

 

『죄와 벌』은 오래된 고전이지만, “인간은 왜 자신의 논리로 자신을 파괴하는가” “사회는 어떻게 한 개인의 절망을 방치하는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봅니다. 따라서 이 작품은 단지 오래된 고전으로서의 위치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유효한 인간학적 보고서이며, 누군가의 내부에서 벌어지는 ‘도덕적 붕괴’와 ‘회복의 가능성’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책입니다. 이 책을 읽은 후에는 반드시 같은 작가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어야 합니다. 절대 후회하지 않을 선택이 될 것입니다.

 

→ 유성호 교수님이 건네는 또 다른 도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이 서재에 소개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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