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식인의 서재
서울대학교 빅데이터 기반 지식정보플랫폼 LikeSNU에서는 우리 사회 각 분야 지식인의 마음 속 서재에 꽂혀 있는 다양한 책들을 소개합니다. 두 번째 지식인의 서재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법의학교실 유성호 교수님의 서재를 소개합니다.
유성호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법의학교실 교수
연구분야 법의학
저서 -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 - 「법의학자 유성호의 유언노트 」 - 「시체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 - 「법의학」 - 「죽음학교실 」 |
경력 -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석사 -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박사 - 미국 NIH 박사후 연구원 - 서울대학교 교수 - 서울대학교 의학도서관장 - 대한의학회 법제이사 - 대한법의학회 윤리이사 - 대검찰청 자문위원 - 서울고등법원 및 서울중앙지방법원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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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단풍이 아름다운 만추의 어느 날, “법의학 전문가의 시선으로 좋아하는 책들을 지식인의 서재라는 기고 형태로 소개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문득 웃음이 났습니다. 법의학자, 교수, 지식인, 독서가—이 네 단어가 한 문장 안에 나란히 붙어 있는 풍경이 낯설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죽음의 흔적을 읽는 사람이지, 삶을 경영하는 멋진 지식인의 모습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 단어들이 제게 주는 묘한 설렘도 있었습니다. ‘죽음’이라는 무거운 세계 속에서 살아가면서, 책이라는 또 다른 세계를 통해 균형을 유지해온 삶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법의학은 인간의 최후를 해석하는 학문입니다. 그 최후의 순간을 마주하면서, 저는 역설적이게도 책을 통해 더 완강하게 ‘삶’에 기대어 왔습니다.
책을 펼치고, 손끝으로 종이를 만지고, 빛의 각도에 따라 글자가 달리 보이는 순간마다—나는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됩니다.
이 글은 그런 의미에서, 죽음을 통해 삶을 배우는 직업을 가진 한 사람이 책을 통해 어떻게 균형을 잡아왔는지에 대한 조용한 기록입니다.
저는 몇 번의 시도 끝에 이북 리더기를 모두 타인에게 넘겼습니다.
부검대 위의 냉기 속에서 하루를 보내다 보면, 저녁에 집으로 돌아와 따뜻한 종이책을 펼치는 일이야 말로 제 삶의 온도를 회복시키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시신을 만질 때 느껴지는 ‘온도 차’는 의학적으로는 사망시각 추정의 단서이지만, 인간적으로는 삶과 죽음을 가르는 가장 직관적 감각입니다.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광택 없는 종이, 간혹 느껴지는 눌린 활자의 요철(凹凸), 오래된 책장 냄새 같은 것들은 디지털 화면이 결코 대체할 수 없는 ‘살아 있는 질감’을 줍니다.
종이책을 읽는다는 것은 결국 사라질 수밖에 없는 인간의 감각을 기록하는 일입니다.
삶을 다루는 가장 감각적 방식.
따라서 저에게 독서는 단순한 지식 축적이 아니라 감각의 재생입니다. 법의학이 죽음의 사실을 다룬다면, 독서는 삶의 감각을 되돌리는 일입니다.
저는 이번 가을부터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도서관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근사하게 새로 지어진 의학 도서관에 업무 차 들를 때면, 저는 종종 서가 사이에서 가만히 서 있는 저 자신을 발견합니다. 부검실에서 나온 직후에도, 근거 없는 위안처럼 책을 쳐다보게 됩니다. 왜일까요?
시신은 죽음의 이야기를 남기고, 책은 삶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도서관은 제게 죽음과 삶 사이의 숨구멍 같은 존재입니다.
이제는 아들뻘의 학생들의 대출기록에서 “뇌 과학, 불안, 마음, 인간관계, 죽음” 같은 키워드를 볼 때마다, 사회가 빠르게 변화하는 만큼 젊은 세대가 ‘인간 답게 사는 법’을 더 치열하게 찾고 있다는 사실을 느낍니다.
법의학적 분석이 삶의 민 낯을 드러낸다면, 책 읽기는 그 민 낯을 이해하고 위로하는 작업입니다.
-삶을 더 깊게 바라보게 만든 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