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이 모든 책들을 소장하고 있다는 게 공표되었을 때 사람들이 받은 첫 느낌은 엄청난 행복감이었다. 모든 사람들은 손에 닿지 않은 곳에 숨겨져 있는 어떤 보물의 주인이 된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 루이스 보르헤스, 「바벨의 도서관]
작년 연말, 유튜브가 보내준 ‘한 해 동안 내가 즐겨들은 음악 리스트’를 보고 새삼 놀란 적이 있습니다. 제가 좋아했다고 믿어온 방대하고 폭넓은 음악들에 비해서, 특정 장르의 노래들이 유독 상위권에 몰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순위에 기록된 음악들이 하나같이 비슷비슷한 느낌이라는 점도 눈에 띄었습니다. 곰곰이 되짚어보니, 어느 순간부터 제가 자발적으로 음악을 찾아 나서기보다 알고리즘이 이끄는 대로만 음악을 듣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런 경험이 꼭 저만의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요즘 많은 분이 체감하듯이, 알고리즘은 우리의 이용 기록을 분석해서 좋아할 법한 콘텐츠를 끊임없이 제안해 줍니다. 덕분에 원하는 정보를 아주 쉽게 얻을 수 있는 것 같지만, 실상은 비슷한 취향의 울타리 안에 머무는 ‘필터버블(Filter Bubble)’에 나도 모르게 갇히고 맙니다. 저 또한 알고리즘이 추천해주는 관성 속에 안주하면서 새로운 소리를 탐구할 기회를 놓치고 있었던 셈입니다.
매일 음악을 생각하고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새로운 음악과 책을 발견할 때의 즐거움이 몹시 닮아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음악을 만날 때의 설렘이,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낯선 책을 맞닥뜨리는 경험과 비슷하게 다가오기 때문이지요. 정보는 넘쳐나지만, 오히려 ‘나만의 의미 있는 발견’은 어려워진 시대에, 도서관은 매우 소중한 대안적 공간이 되어줍니다. 무수한 정보 속에서도 알고리즘이 설계한 좁은 경로를 벗어나, 필터링 되지 않은 세계 그 자체를 가감 없이 보여주니깐요.
저에게는 도서관의 책장 사이를 자유롭게 거닐며, 문득 눈에 들어온 책을 집어 드는 순간이 유난히 설레고 즐겁습니다. 도서관 본관에 들어서자마자 큐레이션 되어 있는 신간 도서들을 천천히 구경하는 시간 역시 저에게는 놓칠 수 없는 기쁨입니다. 혹시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갔다가, 생각지도 못한 다른 책을 만나서 뜻밖의 수확을 거둔 적이 있지 않나요? 소설가 보르헤스가 「바벨의 도서관」에서 묘사했듯이, 무한히 확장되는 텍스트의 세계 속을 거니는 일은 알고리즘이 대신해줄 수 없는 ‘길을 잃을 수 있는 창의적인 자유’를 우리에게 선사한다고 봅니다.
ㅣ나의 독서 습관: 선형적 읽기와 비선형적 읽기 사이에서
그동안의 독서 습관을 되짚어보니, 제가 음악을 대하는 태도와 책 읽는 방식이 몹시 닮아있더군요. 책을 대하는 저의 소소한 일상들을 공유해봅니다.
♬ 여러 책을 동시다발적으로 읽는 편입니다.
한 책만 처음부터 끝까지 파고들기에 세상에는 너무나 재밌는 책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어떤 책에 꽂히면 주저하지 않고 당장 찾아서 읽는 편입니다. 여러 책을 동시에 찾아서 읽다 보니 자연스레 이 책, 저 책을 오가며 읽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또 연구 과정에서 여러 문헌을 참고하는 직업적 특성이 이러한 독서 습관을 자연스럽게 형성한 듯합니다. 특히 연구할 때 비슷한 주제를 다룬 여러 책을 넘나들며 읽다 보면, 책들 사이에서 일종의 화학 작용이 일어나듯 뜻밖에 재밌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는데, 제게는 가장 즐겁고 짜릿한 순간입니다. 유년 시절부터 힙합, 발라드, 댄스음악, 전자음악, 뉴에이지, 월드 뮤직, 현대음악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이리저리 건너뛰며 듣던 청취 습관과도 닮아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런 비선형적 읽기 역시 창의적인 사고의 중요한 원천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텍스트에 오래 머무르지 못하는 독서 경험이 인간의 사고 능력을 퇴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하는 시선도 있습니다. 하지만 비선형적 읽기는 이미 거스를 수 없는 독서 방식이 되었고, 여러 책을 오가며 읽는 과정이 오히려 뻔하지 않은 사고를 가능하게 해주기도 합니다. 저는 한 권에 깊이 집중하는 ‘선형적 읽기’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이리저리 건너뛰며 읽는 ‘비선형적 읽기’ 또한 창조적인 사고의 훌륭한 원천이 된다고 믿습니다.
♬ 기차나 비행기에서 책 읽기의 몰입을 즐깁니다.
비교적 시간이 자유롭던 학부 시절에는, 심심할 때면 집에서 광화문 교보문고까지 버스를 타고 가며 책 읽는 시간을 참 좋아했습니다. 아직은 KTX가 비싸게 여겨지던 대학교 2학년 때 서울역부터 부산역까지 무려 6시간이나 새마을호를 타고 부산 여행을 간 적이 있었습니다. 워낙에 이동시간이 길어서인지 내릴 즘에는 철학책 한 권을 다 읽을 정도였죠. 그때 이전까지 도통 이해되지 않던 어느 철학자의 사상을 이해했던 성취감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소중한 기억입니다. 최근에는 여행지로 가는 어두컴컴한 비행기 안에서 이어폰으로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을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여행지로 이동한다는 설렘과 외부와의 단절된 고립감이 합쳐져 독특한 몰입감과 해방감을 선사해주기 때문이죠. 아이러니하게도 도서관이나 집보다, 낯선 곳으로 이동하며 읽는 선형적 책 읽기가 훨씬 더 깊은 몰입감을 줄 때가 많습니다.
♬ 책에 정성 들여 메모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기억하고 싶은 구절에는 형광펜으로 줄을 치고, 기억하고 싶은 페이지에 책갈피나 포스트잇을 붙여두는 일을 좋아합니다. 포스트잇이 많이 붙었다는 건 그만큼 제가 애정 하는 책이라는 의미입니다. 어릴 적부터 필기하는 것을 무척 좋아했던 저는 책 여백에 정성 들여 메모 남기는 일을 즐겨 왔습니다. 디지털 자료가 늘어난 요즘에는 PDF 파일에 타이핑으로 메모를 남기는 경우가 많아졌지만, 가끔은 종이책에 사각사각 필기하며 기록을 남기던 시간이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 타인의 서가를 구경하는 것도 좋아합니다.
예전에 한 작곡가를 인터뷰하러 갔다가 작업실에 빼곡히 들어선 책들을 구경하면서 오랫동안 책 이야기를 나누다, 미처 인터뷰를 끝내지 못한 적이 있습니다. 그만큼 책은 제게 강한 호기심과 지적 자극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입니다. 비록 그날 인터뷰는 끝내지 못했지만, 책을 배열한 방식과 즐겨 읽는 책들을 통해 그 작곡가의 음악 세계를 마음 깊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서가를 들여다본다는 것은, 그 사람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되기도 합니다. 비단 개인의 서가뿐만 아니라,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책이 배열된 방식을 바라보는 일만으로도, 같은 책이 다른 의미로 다가오고 새로운 생각이 촉발되기도 합니다.
♬ 활자에서 소리로
본문에 언급된 음악이나 영화를 찾아보는 습관은 저의 상상력을 넓혀주는 소중한 통로입니다. 예전에 한 음악 비평서에 언급된 음악들을 빠짐없이 찾아서 들어본 적이 있는데, 연구에 큰 도움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인생 플레이리스트’를 발견하는 즐거움도 누릴 수 있었습니다.
ㅣ추한 것, 소외된 것, 비주류로 치부되는 것
무수한 고민 끝에 제게 영감을 준 책들을 꼽고 나니, 곧이어 공통점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제가 그동안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여겨온 관습이나 통념에 질문을 던지는 책들에 매료되어 왔다는 점입니다. 아래에 추천하는 책들 역시 오랫동안 추하거나 비주류로 치부됐거나, 너무 익숙해서 의심하지 않게 된 생각들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책들입니다. 또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하고 있는 것들을 질문하는 책들이기도 합니다.
저는 동시대 음악을 연구하는 음악학자입니다. 세상에는 K팝, 발라드, 힙합, 재즈, 트로트, 인디음악 등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있지만, 저는 그중에서도 주로 최근에 만들어진 현대음악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가치가 있음에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거나, 막 주목받기 시작한 작품들의 예술적 가치를 설득하고 소개하는 일에 소명을 느낍니다. 그 과정에서 종종 “불편하다”, “무섭다”, “이게 도대체 왜 음악이냐”라는 불평이나 저항을 마주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소설이나 영화, 미술 작품이 그러하듯, 음악 역시 쾌나 즐거움, 카타르시스 외에도 경악, 충격, 컬트 등 다양한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T. S 엘리엇이나 제임스 조이스의 불친절한 시를 읽으면서 단박에 파악되지 않아도 계속해서 이해하려 노력하듯이, 음악 역시 우리를 불편하게 만듦으로써 새로운 생각을 촉발할 수 있다면, 그리하여 우리의 사유를 확장해준다면 그것이야말로 중요한 예술적 기능 아닐까요?
오랫동안 낯설고 불편한 음악들에서 가치를 찾고 연구해오다 보니, 저의 독서 취향 역시 자연스럽게 음악과 닮아갔던 것 같습니다. 제가 아끼고 좋아하는 책들은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던 생각들을 송두리째 뒤흔들며, 일상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책들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음악과 마찬가지로 소외된 것, 무시된 것, 들리지 않던 것, 비주류로 밀려난 관점 속에서 오히려 아직 탐색되지 않은 가능성과 창의성이 발견된다고 믿어왔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관심사는 자연스럽게 철학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습니다. 저는 학부 시절 작곡과 철학을 함께 전공했는데, 철학이 제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이유 역시 현실의 제약에서 벗어나 다양한 생각을 촉발한다는 점에 있었습니다. 너무 익숙해져 더 이상 질문하지 않게 된 생각들을 삐딱하게 바라보게 만들고, 다양한 상상을 할 수 있게 만든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이 글에서 책 이야기를 음악 이야기와 나란히 놓아보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책과 함께 읽으면 좋을 만한 음악들을 QR 코드로 함께 소개해두었습니다. 책을 읽는 경험이 텍스트에만 머무르지 않고, 다채로운 감각으로 확장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저는 꼭 전위적이거나 난해한 예술만이 우리를 자유롭게 만든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떤 책이든, 또 어떤 음악이든, 우리를 익숙한 패턴에서 잠시 벗어나게 하고 생각의 폭을 넓혀준다면, 그것은 충분히 가치 있는 경험이라고 봅니다.
❝ 움베르토 에코는 「추의 역사」 서문에서 ‘추함’과 연관된 온갖 자극적인 형용사를 열거하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에코가 나열한 단어들은 세간에서 말하는 아름다움과는 대척점에 놓인 것들입니다. 그러나 에코는 예술이 오로지 아름다움만을 다뤄왔다는 통념에 의문을 제기하며, ‘추’의 시선으로 예술사 읽기를 시도합니다.
「추의 역사」는 「미의 역사」와 함께 기획된 책이지만, 저를 단박에 사로잡은 것은 「추의 역사」였습니다. 고대 그리스 신화와 성서, 중세 회화, 문학과 철학, 록 음악과 현대음악에 이르기까지, 에코는 ‘추’가 예술사 속에서 어떻게 형상화되어 왔는지를 집요하게 추적합니다. 방대한 시대와 장르를 종횡무진하는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지 않아도, 관심 가는 장면을 넘겨가며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즐거움을 줍니다. 책 곳곳에 실린 화려한 도판들 덕분에, 그림을 감상하는 경험만으로도 흥미를 끄는 책입니다.
이 책은 지나가는 선원들을 유혹해 파멸로 이끄는 세이렌과, 자식들을 살해하는 메데이아 등 고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잔혹한 이야기들로 시작됩니다. 이어서 반인반신의 형상, 악마와 괴물, 지옥의 이미지들이 차례로 호출되기도 합니다. 성경 속 이야기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가시관을 쓰고 피를 흘리는 장면이나, 순교자들이 고통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 역시 ‘숭고한 추’라는 관점에서 새롭게 조명됩니다.
산업혁명 이후 도시가 만들어낸 새로운 형태의 추를 조명하는 장 역시 흥미롭습니다.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에 등장하는 빽빽하고 추잡한 런던의 풍경, 에드거 앨런 포가 「군중 속의 사람」에서 묘사한 사무적이고 공허한 눈빛의 인간 군상들은 근대 도시가 품은 불쾌하고 낯선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이 책이 인상적인 이유는 단순히 추한 것들을 긁어모은 것에 그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에코의 핵심적인 주장은 ‘추’가 시간과 문화에 따라 상대적으로 규정되어 왔다는 점입니다. 한 시대에 불편하고 천하다고 여겨졌던 것이, 다른 시대에는 예술이 보여주는 도전이나 저항의 상징으로 읽히기도 합니다. 가령 피어싱과 같은 신체 변형은 과거에는 음란함이나 사탄 숭배의 징표로 간주되지만, 20세기에는 기존 질서에 대한 젊은 세대의 도전으로 읽히기도 했다는 거죠.
후반부로 갈수록 에코의 주장은 더욱 또렷해집니다. 사이보그, 기계 장치를 부착한 인간, 장애 예술에 담긴 ‘추’를 다루며, 그는 불치병과 장애, 사회에서 배제되고 무시되어 온 사람들의 현실이 결코 ‘미’의 언어만으로는 포착될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영화감독 데이비드 린치는 “세상에는 늘 표면 아래에서 진행되는 완전히 다른 무엇이 존재하며, 영화가 하는 일은 그 표면 아래의 갈등과 어둠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 책은 그러한 불편함을 회피하지 않고 세상으로 끌어냈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멋지고 매혹적입니다. ❞
[♬ 추천음악」
'In Heaven' -영화 "이레이저 헤드" -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영화 "이레이저 헤드"는 주인공 헨리가 원치 않게 아버지가 되면서 겪는 불안과 공포를 그려낸 영화입니다. 영화는 뚜렷한 인과관계나 설명 없이, 출산과 육아에 대한 두려움, 고립감, 죄책감 등을 악몽 같은 이미지로 표현합니다. 화면을 채우는 기형적이고 비인간적인 형상들, 그리고 불길하고 거슬리는 소음들로 가득찬 음악은 「추의 역사 」에서 다뤄졌던 온갖 종류의 ‘추’가 영화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이 가운데 등장하는 음악이 'In heaven'입니다. 잠 못 이루는 주인공 앞에 별안간 혹 달린 여인이 등장해 “천국에서는 모든 것이 잘 될 거야(In heaven, everything is fine)”라는 노래를 부릅니다. 여인의 노래는 평화롭고 감미로운 자장가처럼 들리지만, 영화 전체의 맥락 속에서는 오히려 기이하게 들리며, 불안과 아이러니를 증폭시킵니다.
❝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콘서트홀에 가본 적이 있으신가요? 콘서트홀은 우리에게 명작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지만, 동시에 어딘가 부자연스럽고 불편한 공간이기도 합니다. 음악이 시작되면 우리는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헛기침을 삼키며, 최대한 조용히 귀를 기울여 집중하려고 노력합니다.
「청중의 탄생」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클래식 음악의 청취 문화에 질문을 던지는 책입니다. 왜 클래식 음악 콘서트장은 대부분 과거의 음악으로 채워져 있을까요? 왜 우리는 콘서트홀에서 숨죽여 청취해야 할까요? 이 책은 우리가 자연스럽게 믿어온 청취 관습과 음악적 규범이 사실은 보편적이거나 시대를 초월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집중해서 듣는 음악’의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18세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음악을 ‘진지하게 청취한다’는 개념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음악은 예배나 연회처럼 다른 활동과 함께 소비되는 경우가 많았고, 오로지 소리에만 몰두해 듣는 문화는 드물었습니다. 공공연주회가 등장한 이후에도 음악회는 카드놀이와 잡담이 동반되는 사교의 장에 가까웠습니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 부상한 부르주아 계층은 음악을 교양과 자기 수양의 대상으로 삼았고, 그 과정에서 음악은 ‘즐기는 것’보다 ‘이해해야 하는 것’으로 변모하게 됩니다. 이후 19세기에 음악을 듣는 일은 감각적 즐거움을 넘어 작품의 구조와 의미를 파악하는 진지한 경험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거장 작곡가의 신화 부수기’도 감행합니다. 변화된 청취 문화 속에서 작곡가는 숭배의 대상이 되었고, 그들의 음악은 위대한 작품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 책에서는 베토벤의 초상화와 동상, 날조된 전기 등을 근거로 삼아, 베토벤의 천재 신화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파헤칩니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저자는 20세기에 등장한 복제 기술로 인해 진지한 음악 청취가 근본적인 변화를 겪었다고 말합니다. 음반, 스피커, 축음기 같은 매체를 통해 음악은 더 이상 콘서트홀에만 머무르지 않게 되었고, 언제 어디서든 들을 수 있는 것이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해서 듣는 대신, 원하는 부분만 반복해서 듣는 방식도 당연해졌죠.
오늘날 클래식 음악은 청취 문화의 변화 속에서 급격한 진통을 겪는 중입니다. 음악은 유튜브와 스트리밍 서비스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자유롭고 다채로운 방식으로 소비되고 있습니다. 클래식 음악 역시 이어폰을 끼고 원하는 부분을 반복해서 듣거나, 여러 트랙을 오가며 감상하는 일이 요즘은 오히려 익숙한 풍경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청취 방식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면서 클래식 음악이 맞지 않는 청취 방식 때문에 곧 종말을 맞이할 것이라고 한탄하는 의견도 존재합니다. 이러한 비판은 스마트폰을 비롯한 읽기 매체의 변화가 독서 방식을 퇴행시켰다고 우려하는 시선과도 닮아 있습니다.
그러나 「청중의 탄생」은 다시 묻습니다. ‘우리가 ‘올바른 듣기’라고 믿어온 방식은 과연 보편적인 것인가?’ 음악을 담아내는 공간과 매체는 필연적으로 음악에 대한 태도 역시 변화시킵니다. 변화하는 청취 환경 속에서 클래식 음악 또한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며 진화해가는 것은 아닐까요? ❞
[♬ 추천음악]
베토벤의 '교향곡 5번' -카라얀 지휘 -
베토벤의 "교향곡 5번"은 콘서트홀과 가장 잘 어울리는 음악입니다. 베토벤이 세상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오늘날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형태의 콘서트홀이 만들어졌고, 곧이어 그의 음악이 ‘진지한 청취’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지요. 그런 점에서 '교향곡 5번'은 이른바 ‘콘서트홀 음악’의 상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베토벤의 음악을 지휘하는 카라얀의 엄숙하고 비장한 표정에 주목해보시기 바랍니다.
❝ 「포스트프로덕션」은 디지털 문화의 확산 이후 예술에서의 ‘새로움’이 더 이상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데 있지 않으며,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선택하고 조합하며 변형하는 방식으로 이동했다고 주장합니다. 박사 논문을 쓰던 시절, 이 책은 제게 엄청난 자극을 주었는데, 그 이유는 오늘날의 예술 활동이 우리 일상의 삶과 결코 분리된 것이 아니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스마트폰으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우리의 모습을 떠올려봅시다. 우리는 범람하는 정보의 바다 속에서 원하는 이미지를 검색하고, 선별하고, 약간의 변형을 더해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거나 메신저를 통해 공유하는 일을 번복합니다. AI 시대라고 불리는 지금도 이 모습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원하는 바를 프롬프트로 입력하고, 생성된 결과물 가운데 일부를 선택한 뒤, 추가적인 지시와 수정을 거듭하며 맞춤형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방식은 이미 익숙한 문화적 행위로 자리 잡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책의 저자인 부리요는 오늘날의 ‘창작’이란 기존의 것을 선택하고 선별해 후편집하는, 이른바 ‘포스트프로덕션’적 행위로 변화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한 예술가의 말을 인용하며, 오늘날의 예술 활동을 “개가 주인이 던져버린 것을 다시 물고 오는 행위”에 비유한 바 있습니다. 정보 시대로 접어들면서 과거의 산물들이 기하급수적으로 축적되었고, 그 결과 예술의 개념 자체가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부리요에 따르면 예술가들은 더 이상 미술관에 있는 작품을 넘어서려 하기보다, 방대한 자료 가운데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골라 조작하고 재구성하는 데 주력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부리요가 오늘날의 예술가를 ‘고고학자’에 비유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예술가들이 과거의 산물을 재활용해 새로운 의미를 덧입히듯이, 동시대의 예술가들은 무언가를 발명하는 존재라기보다 과거의 파편과 잔해를 탐색해 새로운 해석을 부여하는 고고학자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그는 DJ의 모습에 예술가의 모습을 빗대기도 합니다. DJ가 기존의 음악을 재편집해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내듯이, 오늘날의 예술가들 역시 기존의 문화적 산물들을 재활용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낸다는 것이죠.
오랜만에 「포스트프로덕션」을 곱씹어보면서, AI 공학자 아흐메드 엘가말(Ahmed Elgammal)의 한 인터뷰가 떠올랐습니다. 그는 베토벤이 미처 완성하지 못한 <교향곡 10번>을 완성하는 AI 프로젝트의 책임자로 참여했는데, 방대한 결과물을 생성해내는 AI의 기술력만큼이나, 의미 있는 소리들을 선별하고 재조합하는 인간의 판단이 중요하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말합니다. 엘가말은 AI가 인간의 작업을 전적으로 대체하기보다는, 앞으로 인간의 비전과 ‘선별(curating)’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포스트프로덕션」이 전하는 메시지 역시, 정보가 범람하는 시대에 타인의 산물을 무비판적으로 차용해도 된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이 책은 자동화된 기술로 무엇이든 쉽게 얻을 수 있는 시대일수록, 음악학자 캐롤 버거(Karol Berger)의 표현처럼 ‘걸작과 쓰레기를 분별’하고, 그것을 자기만의 것으로 변형해낼 수 있는 안목, 감각, 그리고 철학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
[♬ 추천음악]
'히치콕 에튀드(2010)' -니콜 리제 -
「포스트프로덕션」을 읽으며 곧바로 떠오른 작품은 캐나다 출신 작곡가 니콜 리제(Nicole Lizeé)의 "히치콕 에튀드"였습니다. 오늘날 작곡은 새로운 재료를 창조하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기존의 문화적 산물을 선택하고 편집하며 변형하는 실천으로 확장되는 중입니다. 작곡가들은 자신의 취향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며, 인터넷에 떠도는 밈이나 이미지, 영화와 뮤직비디오 등을 적극적으로 변형해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냅니다.
"히치콕 에튀드"는 서스펜스 영화의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Alfred Hitchcock)의 영화를 재편집해 만든 작품입니다. 본래 에튀드(etude)가 특정한 연주 기법을 연마하기 위해 쓰이는 형식인 것처럼, 이 작품은 히치콕 영화에 다양한 영상 테크닉을 접목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히치콕 영화의 대사와 음악, 영상과 이미지를 해체하고 왜곡함으로써 원작의 서스펜스는 한층 극대화됩니다. 특히 마지막에 영화 "싸이코"를 변형하여 살해자의 광기와 피해자의 비명 소리를 집요하게 부각시키는 대목이 압권입니다.
❝ 「레트로마니아」는 동시대의 음악 문화를 진단한 책입니다. 우리는 최첨단 기술이 지배하는 일상을 살고 있지만, 기록이 쉬워진 만큼 역설적으로 과거가 끊임없이 소환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인터넷에는 오래된 음악과 신문, 뉴스, 공연 자료들이 끝없이 업로드되고, 과거는 언제든지 꺼내 소비할 수 있는 것이 되어버렸죠.
사이먼 레이놀즈는 이러한 현상을 단순한 복고 트렌드로만 보지 않고, 디지털 환경이 만들어낸 새로운 문화 조건으로 바라봅니다. 모든 문화적 산물이 디지털 데이터로 변환되면서 저장과 공유가 극도로 쉬워져 버렸고, 그 결과 사람들은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과거에 집착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레이놀즈는 철학자 자크 데리다의 개념을 빌려, 무엇이든 인터넷 아카이브에 저장하고 공유하려는 충동을 ‘아카이브 열병(Archive Fever)’으로 명명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음악 문화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 책은 록과 팝은 물론 샘플링, 매시업, 혼톨로지 음악 등 최근의 음악 경향을 폭넓게 조명하면서, 동시대 음악이 얼마나 과거의 양식에 의존하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동시에 이 책은 우리가 음악을 소비하는 방식에도 주목합니다.
“아이팟과 유튜브는 우리에게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접근성과 선택권을 주었고, 한 개인이 평생 들어도 모자랄 만큼 방대한 온라인 아카이브를 선사했다. 그리고 그 결과, 우리는 음악을 듣지 않게 되었다. 들을 음악이 너무 많은 우리는 더 좋은 부분으로 넘어갈 수 있는 스크롤바나, 다음 곡으로 넘어갈 수 있는 컨트롤 버튼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다. 선택에 대한 부담마저 임의 재생 모드가 해결해주니, 우리가 할 일이라곤 그저 다운로드 버튼을 눌러 세상의 모든 음악을 쓸어 담는 일밖에 없다.”
과연 오늘날 새로운 음악은 더 이상 불가능해진 것일까요? 저자의 비판적 시각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오늘날 음악에서 ‘새로움’과 ‘독창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고민하게 만드는 중요한 화두를 던집니다. ❞
「레트로마니아]의 번역판과 원서 표지를 나란히 실어봅니다. 원서의 표지가 책의 메시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 추천음악]
'리사 프랭크 420/현대의 컴퓨터' (MACINTOSH PLUS - リサフランク420 / 現代のコンピュー) - 맥킨토시 플러스 -
베이퍼웨이브(Vaporwave)는 2010년대 전후 인터넷을 중심으로 등장한 장르로 「레트로마니아」가 지적한 ‘과거에 대한 집착’을 보여주는 음악입니다. 1980, 90년대의 상업음악, 광고 BGM, 이지 리스닝 사운드를 느리게 늘이고 반복하며, 몽롱하고 왜곡된 사운드를 만들어냅니다. 여기에 앨범 표지로는 로마 그리스 조각상과 오래된 윈도우 95 화면, 일본어 텍스트, 깨진 픽셀 등을 의도적으로 포함하여 경험하지 않은 시대에 대한 자본주의적 노스탤지어를 자극합니다. 맥킨토시 플러스의 "리사 프랭크 420/현대의 컴퓨터"에서도 과거의 시점에서 상상한 미래를 느리게 늘어뜨린 몽환적인 사운드로 소환합니다.
❝ 세계적인 예술가 백남준이 남긴 메모와 편지, 악보, 인터뷰 등을 엮은 책입니다. 백남준은 “나의 아이디어는 항상 기술적 능력을 앞서기 때문에 늘 보조 기술자가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는데, 책에 수록된 기록을 따라가다 보면 백남준이 지금도 여전히 앞서가는 사유를 감행했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가장 인상 깊은 점은 백남준이 관습과 규칙, 그리고 장르의 경계를 거침없이 넘나드는 사고를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책에 담긴 기록에서 백남준은 쇤베르크의 음악을 “무조성(a-tonality)”, 존 케이지의 음악을 “무작곡(a-composition)”, 그리고 자신의 음악을 “무음악(a-music)”이라는 개념으로 묘사합니다. 현대음악의 선구자 쇤베르크가 불협화음을 해방시키고, 케이지가 작곡의 개념을 해체했다면, 백남준은 음악 그 자체를 해방시키려 했다는 것이죠. 여기서 말하는 ‘음악 그 자체’란 소리나 형식에 국한되지 않고, 음악을 둘러싼 제도와 권위를 모두 아우르는 것입니다.
책에 실린 악보들에서는 백남준 특유의 유쾌하고 도발적인 전략을 엿볼 수 있습니다. 백남준은 오선보 대신 언어로 된 지시문 형태의 악보를 다수 남겼습니다. 이를테면 "로봇 오페라"의 악보에는 “아리아가 없는 오페라는 지루하다”, “카라얀은 너무 바쁘다”, “바그너는 너무 길다”와 같은 문장들이 적혀 있습니다. 한 번쯤은 떠올렸을 법하지만 쉽게 말로 꺼내기 어려운 생각들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며, 음악계의 권위와 신화를 유쾌하게 뒤흔드는 방식이 인상적입니다.
책에 실린 또 다른 악보 "교향곡 5번" 또한 몹시 도발적입니다. 악보에는 “1월 1일 새벽 1시에 연주하라”처럼 특정한 날짜와 시간을 명령형으로 제시하는 지시문이 등장하는데, 연주 시점은 10의 1000승 × 10의 99승 × 11의 11승 번째 해, 나아가 121212121212…번째 해까지 이어지며 사실상 무한대로 확장됩니다. 이러한 기록 방식을 통해 백남준은 연주를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라 삶 전체의 시간으로 확장시키고, 악보를 읽는 행위만으로도 시공간의 제약을 넘어서는 해방감을 선사합니다.
2026년은 백남준 서거 2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백남준: 말에서 크리스토까지」는 남다른 스케일의 사유를 끝까지 밀어붙였던 백남준을 만날 수 있는 귀중한 책입니다. 사고의 해방을 경험하고 싶은 분들께 기꺼이 추천하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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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환희는 거칠 것이 없어라" -백남준 -
"나의 환희는 거칠 것이 없어라"는 음악으로 음악을 넘어서려 했던 백남준의 급진적인 실험 정신을 상징하는 작품입니다. 이 작업은 1940년대 한국에서 쇤베르크를 처음 접했던 백남준의 개인적인 기억으로부터 출발합니다. 당시 그는 쇤베르크의 '정화된 밤'을 듣고 지나치게 낭만주의적이라며 실망감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25년 뒤 뉴욕에서 우연히 같은 음반을 발견한 그는, 이를 78RPM에서 16RPM으로 극단적으로 감속 재생하여 앨범으로 발표합니다. 그 결과 본래의 선율과 화성은 해체되고, 잡음과 잔향, 노이즈 같은 아날로그 음반의 생경한 물성만이 전면에 드러나게 됩니다.
❝ 「디지털의 배신」은 디지털 기술이 작동하는 방식과 그 이면을 비판적으로 조명한 책입니다. 구글, 유튜브, 넷플릭스, 인스타그램, 그리고 최근의 챗GPT와 제미나이 같은 플랫폼들은 이미 우리의 취향과 행동을 조직하는 하나의 문화적 생태계가 되었습니다. 뉴스에서는 연일 AI와 빅데이터가 가져올 장밋빛 미래를 강조하지만, 이 책은 그러한 기술 낙관주의 담론을 지적합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기술의 뒤편에서 작동하는 권력 구조를 날카롭게 드러낸다는 점에 있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플랫폼은 단순히 콘텐츠를 중개하는 수단이 아니라, 우리의 취향과 행동을 적극적으로 형성하는 장치입니다. 우리는 좋아요, 댓글, 별점 매기기와 같은 일상적인 행위를 통해 끊임없이 데이터를 생산하고, 그 데이터는 다시 알고리즘 분석의 재료가 됩니다. 알고리즘은 이용자를 가능한 오랜 시간 플랫폼에 붙들어두기 위해 설계되었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이미 좋아할 만한 것들만 반복적으로 제시합니다. 그 결과, 우리는 낯설고 불편한 것들을 점점 접하지 못하게 되고, 서서히 편향된 사고에 휘말리게 됩니다.
또 하나 인상적인 대목은 디지털 기술의 사용이 환경 파괴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점이었습니다. 스마트폰과 컴퓨터, 스크린을 밝히는 전력조차 화석 연료 기반의 에너지 위에서 작동합니다. 인터넷 검색 한 번이 주전자에 물을 끓이는 데 필요한 에너지와 맞닿아 있다는 사실은, 디지털 세계가 결코 비물질적이거나 무형의 영역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합니다.
이 책은 궁극적으로 기술에 대한 비판적 리터러시의 필요성을 역설합니다. 저자는 우리가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을 좇아가면서도, 정작 그 기술의 작동 원리와 사회적 효과에 대해서는 문맹에 가깝다고 지적합니다. 손으로 사물을 만지며 느꼈던 감각과 몸의 경험은 점점 사라지고, 기술을 비판적으로 성찰할 기회 역시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죠. 이 지점에서 저자는 기술의 내부 구조와 권력 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리터러시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디지털의 배신」은 기술 만능주의와 기술이 약속하는 유토피아적 미래로부터 한 발 물러서, 동시대 기술 사회를 윤리적으로 성찰하도록 이끕니다. 기술에 파묻혀 살아가는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질문과 태도를 던지는 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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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awlers" -알렉산더 슈베르트-
"Crawlers"는 SNS에 퍼져 있는 사람들의 데이터를 자동으로 수집하고 조작해서 이른바 ‘거울처럼 왜곡된 가짜 사회망’을 만들어내는 프로젝트 작품입니다. 이 작품에서 AI봇들은 인간처럼 행동하여 친구를 맺고 대화를 나누고, 그 과정에서 얻은 정보를 인공지능이 변형하여 진짜 같으면서도 불안정한 복제 세계를 보여줍니다.
❝ 이 책은 러시아의 전설적인 피아니스트 스비야슬라토프 리흐테르를 재조명한 책으로, 20세기의 비범한 피아니스트가 겪은 파란만장한 삶과 음악적 안목을 엿볼 수 있습니다. 많은 음악 천재들이 그러했듯이, 리흐테르 역시 한때 우울증과 신경쇠약에 시달렸고, 까다롭고 괴짜 같은 성격으로 풍문에 휩싸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천재의 신화적 이미지나 자극적인 일화에 집중하기보다, 오히려 소탈하고 진솔한 인간으로서의 리흐테르를 조명합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개인의 경험을 통해 20세기 음악사를 현장감 있게 접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회고담은 리흐테르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며, 그와 직접 교류했던 동시대 예술가들의 모습이 여과 없이 드러납니다. 가령 그는 스탈린 정권 아래에서 굴곡진 삶을 살아야 했던 작곡가 쇼스타코비치를 떠올리며, 그의 불안하고 예민한 성격을 솔직하게 서술합니다. 리흐테르에 따르면 쇼스타코비치는 천재이자 광기에 휩싸인 사람이었고, 동시에 자존심이 강하면서도 쉽게 상처받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리흐테르의 표현에 따르면 쇼스타코비치는 신경쇠약에 시달리면서도 끝까지 정중함과 예의를 잃지 않았던 인물이었습니다.
책에서 가장 매료된 부분은 리흐테르가 무려 25년 동안 쉬지 않고 기록해 온 음악 일기였습니다. 그의 일기에는 짧지만 날카로운 문장들이 곳곳에 등장하며, 우리가 흔히 ‘거장’이라 부르는 연주자들의 음악을 거리낌 없이 비평하는 대목들이 인상적입니다. 그는 호로비츠, 키신, 폴리니, 로스트로포비치, 아바도, 정명훈 등 당대 최고의 연주자들의 연주를 신랄하게, 그러나 충분히 납득 가능한 근거를 들어 평가합니다. 사적인 기록인 만큼 거친 표현도 있지만, 그만큼 날카롭고 생생합니다.
“그는 총명하고 연주를 잘 한다. 하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바다에 뛰어들지는 않는다.” (피아니스트 키신에 대한 비평)
“이 쇼팽은 대단한 근육질이다. 우선 모든 것이 ‘포르테’다. 시정이나 섬세함은 없고, 즉흥성도 느껴지지 않는다. 모든 것이 더없이 정확하긴 하지만.” (피아니스트 폴리니에 대한 비평)
흥미로운 점은 리흐테르가 비평의 칼날을 자기 자신에게도 들이댔다는 점입니다. 그는 뛰어난 재능을 타고났음에도 누구보다 자신에게 엄격한 태도를 유지했습니다. 하루에 세 시간씩 피아노 치는 규칙을 어기지 않았고, 아침저녁으로 양치질을 거르지 않았으며, 프루스트와 토마스 만을 꾸준히 탐독했습니다. 그의 일기에는 자신의 연주를 냉정하게 평가하는 대목들이 반복해서 등장하는데, 그중에서 한 구절은 그의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내 녹음을 들을 때마다 실망을 금할 수 없다. 언제나 내가 예상하던 것과 완전히 같은 것을 듣게 되기 때문이다. 신선함도 의외성도 발견할 수 없는 데서 오는 실망감….”
리흐테르가 ‘천재’라는 명성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움을 갈망했던 연주자였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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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리아빈의 '환상곡' -리흐테르-
리흐테르는 자신의 일기에서 작곡가 스크리아빈의 음악을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스크리아빈의 음악은 우리가 매일 먹는 빵이라기보다는, 이따금 마시고 취하는 독한 술이나 시적인 아편, 혹은 깨지기 쉬운 크리스털과 같다.” 그의 시적인 표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스크리아빈은 낭만적 어법을 사용하면서도 세기 전환기 특유의 독자적인 화성과 신비주의적 세계관을 구축한 작곡가입니다. 리흐테르는 방대한 레퍼토리를 탁월하게 소화했지만, 그중에서 특히 추천하고 싶은 연주는 스크리아빈의 "환상곡"입니다. 그는 지치지 않는 불굴의 에너지와 집중력으로 스크리아빈 음악에 내재한 초월적인 정신력을 밀도 높게 형상화했습니다.
❝ 우리는 매일 뉴스와 SNS를 통해 전쟁과 재난, 폭력의 참혹함을 마주하며, 타인의 불행에 연민과 슬픔을 느낍니다. 그러나 「타인의 고통」에서 수전 손택은 바로 이 지점을 문제 삼습니다. 사진이나 영상을 통해 보여주는 전쟁은 사실상 자극적인 이미지이자 오락적 스펙터클과 다름없다는 것이죠.
이 책의 독창적인 지점은 전쟁과 고통이 ‘볼거리’로 소비되어 온 역사를 회화, 사진, 영화, 문학 등 다양한 사례를 통해 추적한다는 데 있습니다. 손택은 고통받는 육체의 이미지를 보고자 하는 욕망이 인간에게 본래적으로 내재해 있음을 인정합니다. 인간은 나체 이미지에 끌리는 것만큼이나, 고문당한 몸, 절단된 사지, 훼손된 시신의 이미지에서도 은근한 쾌락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손택은 이러한 시선이 아이러니하게도 기독교 예술의 전통 속에서도 발견된다고 말합니다. 지옥의 형상, 세례 요한의 참수, 갓 태어난 히브리 남자아이들의 학살 장면은 모두 고통과 폭력이 반복적으로 시각화되어 온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1839년 카메라가 발명된 이후, 전쟁의 참혹함은 점점 더 적극적으로 기록되기 시작했고, 1930년대 후반부터는 종군 사진사라는 직업이 본격적으로 등장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소련의 정치범 처형, 베트남 전쟁, 걸프 전쟁, 그리고 미국과 이라크의 대테러 전쟁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장면이 이미지로 생산되어 대중에게 제공되었습니다. 그러나 손택은 이러한 이미지의 끝없는 재생산이 오히려 전쟁을 ‘현실’이 아닌 ‘구경거리’로 전환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우려합니다.
그녀에 따르면 잔혹한 이미지의 반복적 재생산은 타인의 고통을 실제적인 문제로 인식하기보다, 일종의 ‘관음증적 향락’으로 전락시키기 쉽습니다. 예컨대 전쟁으로 파괴된 마을의 이미지를 보며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런 일은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전쟁터에 있지 않다. 나는 아직 살아 있다.” 이미지로 가득 찬 세계에서 전쟁은 점점 추상화되고, 그 끔찍함을 실감하기는커녕 오히려 무감각해지기 쉽습니다. 손택은 이미지가 보여주는 현실과 실제 현실 사이에는 언제나 큰 간극이 존재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하며, 타인의 고통을 단순한 연민의 대상으로 소비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SNS의 확산과 함께 개인주의가 더욱 극단화된 오늘날, 「타인의 고통」은 여전히 생각할 거리를 던져줍니다. 틱톡과 인스타그램 같은 플랫폼을 통해 타인의 고통이 가볍고 빠르게 소비되는 지금의 환경은 손택의 문제의식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최근 스탠드업 코미디언 원소윤이 소설 「꽤 낙천적인 아이」에서 서술한 다음의 웃픈 장면은, 타인의 고통에 점점 무감각해진 우리의 현실을 보여줍니다.
“실종 안내 문자가 와요. 굉장히 자주 와요. 세상에 실종자가 이렇게 많은 줄은 미처 몰랐어요. 한번은 친구랑 제 휴대폰이 동시에 요동치길래 깜짝 놀랐어요. 친구가 황급히 휴대폰 화면을 확인하더니 별일 아니라는 듯 쓱, 뒤집더라고요. ‘아아, 그냥 실종.’” - 원소윤, 「꽤 낙천적인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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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너레이션 킬' -슈테판 프린스-
"제너레이션 킬"은 디지털 기술이 전쟁을 인식하는 방식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비판적으로 다루는 음악입니다. 2003년 이라크 전쟁에서 영감을 받은 이 작품은, 원격 조작과 영상 중계를 통해 게임처럼 수행되는 현대 전쟁의 비인간성을 드러냅니다. 무대에는 전통적인 어쿠스틱 악기 연주자와 함께 플레이스테이션 게임 컨트롤러를 사용하는 연주자가 등장합니다. 이때 컨트롤러를 통해 연주자의 소리와 이미지가 실시간으로 조작되면서, 실제 연주자와 가상 연주자의 경계는 점점 흐려집니다.
❝ 2015년 무렵, 심상치 않은 표지에 이끌려 「우리는 어떻게 포스트휴먼이 되었는가」를 서울대 도서관에서 집어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에야 기술의 확산과 함께 ‘포스트휴먼’이라는 단어가 비교적 익숙해졌지만,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포스트휴먼은 국내에서 막 주목받기 시작한 담론이었습니다. 특히 책의 서두에 등장하는 오스트리아의 공학자 한스 모라벡의 주장은 제게 강한 종말론적 상상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모라벡은 인간의 의식을 컴퓨터에 다운로드하고, 뇌의 정보를 기계에 이식함으로써 인간이 생물학적 한계를 극복하고 영생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그러나 헤일스는 이러한 전망을 책 전반에 걸쳐 비판적으로 검토합니다. 헤일스는 사이버네틱스 담론과 SF 소설을 바탕으로, 신체를 벗어난 인간이라는 포스트휴먼적 상상이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를 추적합니다. 헤일스에 따르면 포스트휴먼은 인간 신체의 종말이나 기계의 도움을 빌린 영생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간과 기계는 각자의 질적 차이를 유지한 채 상호작용하며 공진화하는 존재입니다. 즉 포스트휴머니즘은 신체를 떨쳐내는 개념이 아니라, 기술과 함께 끊임없이 변화하는 신체에 기반한 사유라는 것입니다. 또한 포스트휴먼을 이미 결정된 미래가 아니라 우리가 지금 어떤 이야기로 구성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개념으로 바라본다는 점 또한 몹시 인상적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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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로드" -미셸 판데르아-
“세상의 모든 정보가 복사되고 백업되었습니다. 인간의 마음만 빼고요. 인간의 마음이야말로 디지털 시대의 마지막 아날로그 장치 아닐까요?” - 오페라 "업로드" 중 과학자의 대사
네덜란드의 현대음악 작곡가 미셸 판데르아의 "업로드"는 헤일스의 책에서 비판한 ‘뇌 업로드’의 서사를 정면으로 다룬 오페라입니다. 이 작품은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인간의 마음마저 업로드될 것이라는 미래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주인공이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고자 뇌 업로드를 선택했으나, 실패로 돌아가면서 ‘디지털 안락사’를 고민하는 충격적인 서사를 담았으며, 인간의 취약성에 대해 사유하게 하는 작품입니다.
❝ 위에서 소개한 「우리가 어떻게 포스트휴먼이 되었는가」의 문제의식은 「사이보그가 되다」에서도 이어집니다. 어릴 적부터 각각 청각장애와 지체장애를 가지고 살아온 김초엽과 김원영은 이 책에서 기술로 장애를 말끔히 ‘극복’할 수 있다거나 신체를 떨쳐낼 수 있다는 유토피아적 서사를 정면으로 비판합니다. 이 책이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이론이 아닌 실제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두 저자는 사이보그에 대한 대중적 이미지가 장애인의 삶을 설명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현실에서 인간과 기계의 접합은 결코 매끄럽지 않습니다. 기계는 피부를 짓무르게 하고, 염증을 일으키며, 끊임없는 마찰을 동반합니다. 보청기 배터리가 꺼질까봐 늘 노심초사했다는 김초엽의 고백처럼, 기술은 언제나 지속적인 관리와 점검을 필요로 합니다.
장애인을 위한 기술이 기업이 베푸는 온정과 선의의 결과처럼 그려진다는 점을 비판하는 대목 또한 인상적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은 기술을 사용하는 주체가 아니라, 도움을 받는 존재로만 그려지기 일쑤입니다. 나아가 많은 SF 소설이 장애를 극복하고 벗어나야 할 결핍된 상태로 규정한다는 점도 날카롭게 짚어냅니다. 「사이보그가 되다」는 포스트휴먼 담론에 덧씌워진 과장된 수사와 낙관주의를 걷어내고, 지금 여기서 기술과 분투하는 인간의 불완전한 몸과 경험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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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R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 공연 -게일린 리-
바이올리니스트이자 가수로 활동하는 게일린 리는 골형성부전증이라는 선천적 장애를 안고 태어난 음악가입니다. 일반적인 자세로 바이올린을 연주할 수 없지만, 오히려 신체적인 한계를 창의적인 감각으로 만들어낸 것이 특징적입니다. 그는 바이올린을 첼로처럼 몸 앞에 세워놓고, 활을 베이시스트처럼 아래로 쥐어 연주하며, 루프 페달로 자신의 목소리와 연주를 겹겹이 쌓아 하나의 오케스트라 같은 사운드를 만들어냅니다. 이 공연에서 그는 자신의 신체를 극복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오히려 몸과 악기 사이의 마찰 속에서 새로운 음악적 가능성을 만들어냅니다. 이 영상은 제가 진행하는 「음악 속의 철학」 수업에서 강성태 조교님의 제안으로 학생들과 함께 감상하며, 천재 연주자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나눌 수 있었던 소중한 자료이기도 합니다.
이번 글을 쓰면서 학부 시절부터 쓴 일기와 다이어리, 블로그 등 곳곳에 흩어져 있던 독서 목록들을 다시금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책과 다시 만나기도 했고,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취향을 확인하는가 하면, 어느덧 새롭게 자리 잡은 낯선 관심사를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당신이 듣는 음악이 곧 당신을 말해준다(You are what you listen to)”는 어느 스트리밍 서비스의 광고 문구처럼, 책이야말로 한 개인의 내밀한 취향과 사유의 궤적을 고스란히 담아낸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서울대학교 도서관은 제게 늘 감사한 공간입니다. 입학 후 박사 과정을 마칠 때까지, 그리고 강단에 서 있는 지금까지도 저는 습관처럼 도서관에 가는 그야말로 ‘도서관 덕후’입니다. 그래서인지 "지식인의 서재" 기고를 부탁하셨을 때, 그동안 도서관에서 보낸 숱한 시간들이 스쳐 지나가며 무척이나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돌이켜보면 지금의 저를 만든 ‘팔할’은 도서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심지어 지금도 관정도서관 한켠에서 이 글을 마무리하고 있는 중이니까요.(웃음)
이번에 소개한 책들 가운데 일부는 절판되어 시중에서 구하기 어려워졌다는 점은 못내 아쉽습니다. 그렇기에 도서관의 존재가 더욱 중요하게 느껴집니다. 어떤 책이든 이윤의 논리에 따라 사라지거나 폐기되지 않고, 계속해서 보존된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속도와 효율이 지배하는 시대에, 세상의 속도에 휘둘리지 않고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책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위로가 됩니다. 서두에서 이야기했듯이, 알고리즘이 만들어놓은 경로를 잠시 벗어나 도서관의 드넓은 서가에서 한 번쯤 길을 잃어보는 건 어떨까요. 도서관에서의 길 잃기가 예상치 못한 새로운 사유의 경로를 열어주리라 기대합니다.
은퇴까지 남은 해가 한자리 숫자가 된 이후, 가끔 주위에서 은퇴 후의 계획을 묻곤 합니다. 그 때마다 가족과 여행하며 유유자적하게 지낼 생각이라고 얘기하지만, 사실 아직 제 아내를 포함해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은퇴 후의 꿈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조그마한 책방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연장선상에서 잘할 자신은 없지만 학교에서 가장 맡고 싶은 보직이 도서관장입니다. 물론 제가 상상하는 도서관장은 관장실에 하루 종일 읽고 싶은 책을 뒤적거리는 모습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도서관에서 <지식인의 서재> 기고를 부탁 받았을 때 거절하기 힘들었습니다. 예전에 알던 로스쿨 교수님이 "빚 중에서도 글빚이 제일 무섭다"고 하셨는데 그 말이 새삼 떠오르며 조심스레 글을 시작합니다.
ㅣ어떻게 읽어야 하는 걸까?
청소년 시절의 저는 다독가였고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가장 많이 빌려가는 학생 중 한 명이었습니다. 저는 책을 읽을 때 꼭 서문을 읽습니다.전공 관련 서적의 경우 서문에 책을 어떤 순서로 읽어야 하는지 특히 잘 설명이 되어 있어서 무척이나 도움이 되고 교양서적에서도 마찬가지로 저자의 의도가 가장 잘 드러나 있기 때문에 책을 펼치면 반드시 읽곤 합니다. 또한 독서를 마친 후에 다시 서문을 읽어보면 처음에 미쳐 보지 못했던 저자의 생각이 새롭게 보이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다독가였던 저도 어느 순간 바쁘다는 핑계로 책과 조금씩 멀어졌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최근 10년 동안 다시 꾸준히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오늘날의 저를 만든 8할은 책의 힘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같이 읽고 싶은 책들을 여러분께 추천합니다.
ㅣ같이 읽고 싶은 책 10권
레 미제라블 전 5권
빅토르 위고/ 정기수 번역 민음사 (2012)
❝ 코로나 시기에 제가 이룬 유일한 업적을 하나 꼽으라면, 아마 민음사판 『레 미제라블』 전집 5권을 완독한 일일 겁니다. 제가 전집을 모두 읽었다고 하자 어느 인문대 교수님께서 요즘 불문과 학생들조차 『레 미제라블』 전집을 완독하는 경우가 드물다며 웃으시더군요. 아내와 처음 함께 본 공연도 한국 초연된 『레 미제라블』이었고, 영화 역시 온 가족이 함께 보았습니다. 그때 언젠가는 원작을 꼭 읽고 싶다고 마음먹었는데, 영화 보던 당시 초등학생이던 아들들은 "We are the miserable"이라며 불평했던 기억도 납니다. 막상 1권을 읽기 시작하니 영화나 뮤지컬과는 전혀 다른 구성에 적잖이 놀랐습니다. 첫 100페이지까지 장발장이 등장하지 않아 당황했고, 자베르 경감은 300페이지를 넘어서야 모습을 드러났습니다. 게다가 마지막에는 19세기 파리의 하수구에 대한 방대한 묘사가 수십 페이지에 걸쳐 이어져 책을 덮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끝내 완독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 도전 목표는 『몬테크리스토 백작』 전집 완독입니다. ❞
난처한 미술이야기 1~8권
양정무 사회평론 (2016)
❝ 지난 추석 연휴에 네덜란드를 방문했을 때 미술관이 무척 많다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그러하듯 저에게 미술관의 문턱은 매우 높게 느껴졌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림을 자세히 들여보다가도 뒤로 갈수록 유명한 작품 앞에서 사진만 찍고 서둘러 지나치기 바빴습니다. 제게 미술관이란 관람 후에 다리가 아픈 곳으로만 기억될 뿐 그림은 여전히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그런 저에게 양정무 교수의 난처한 미술이야기는 미술 문외한에게 미술작품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야를 열어준 책입니다. 이 시리즈는 2016년 원시, 이집트, 메소포타미아의 문명과 미술에 관한 1권을 필두로 총 8권의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단순히 그림에 대한 설명에 그치지 않고 작품의 시대적 맥락과 지역적 배경이 어떻게 미술에 영향을 미쳤는지 맛깔나게 풀어내고 있습니다. 이 책들을 읽고 난 이후부터 새로운 도시를 방문할 때마다 그 도시의 미술관은 방문 1순위가 되었습니다. 네덜란드에 고흐를 비롯한 유명한 화가가 유독 많은 이유 중 하나는 중산층들의 그림에 대한 사랑으로 자연스럽게 화가가 늘어난 것이라고 합니다. 이 책을 통해 미술관이 모두에게 보다 더 친숙한 공간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
코스모스
칼 세이건 / 서광운 번역 문화서적 (1981)
❝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제일 처음 접한 것은 중학교 3학년 때로 기억합니다. 집돌이였던 저는 집에서 뒹굴거리며 책을 읽는 것을 가장 좋아했는데 어떤 이유인지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이 책이 눈에 띄어 읽게 되었습니다. 읽는 내내 우주의 신비에 흠뻑 빠져들면서 한동안 서울대 천문학과 진학을 목표로 삼기도 했습니다. 비록 천문학과에 진학은 하지 않았지만 천문학자들과 공동연구를 꾸준히 하고 있는 걸 보면 이 책의 영향이 적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 읽었던 책 한 권이 인생에 큰 영향을 주게 된다는 걸 실감나게 하는 제게는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는 책입니다. ❞
삼체 1-3권
류츠신 / 이현아, 허유영 번역 자음과 모음 (2024)
❝ 작년에 넷플릭스에서 가장 재미있게 본 시리즈를 꼽으라면 저는 『삼체』를 뽑고 싶습니다. 소설의 주요 배경이 되는 "삼체문제"는 세 개의 물체가 서로 중력으로 영향을 미칠 때 각 물체의 운동과 궤도를 예측하는 문제를 말합니다. 19세기말 푸앵카레가 이 문제에 대한 일반적인 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했고 오늘날 카오스 이론의 출발점으로도 여겨집니다. 1편에 나오는 문화혁명에 대한 묘사는 충격적이었으며 드라마를 너무 재미있게 본 나머지 원작을 읽고 싶다는 생각에 책을 구입하여 바쁜 와중에서는 단숨에 책을 읽어 내려갔습니다. 이 책의 작가인 류츠신은 SF 분야에서 최고권위 중 하나로 꼽히는 "휴고상"을 아시아 작가 최초로 수상했으며 삼체문제를 비롯한 여러 가지 어려운 과학개념을 흥미롭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물리학 난제에 관한 이야기를 기반으로 하지만 미지의 외계문명에 대한 두려움과 갈등, 그리고 인류의 운명에 대한 서사를 시종일관 긴장감 있게 전개해 나갑니다. SF를 좋아하는 독자들이라면 꼭 읽어보기를 권유하고 싶습니다. ❞
사랑과 혁명 1-3권
김탁환 해냄출판사 (2023)
❝ 『불멸의 이순신』, 『황진이』 으로 잘 알려진 김탁환 작가가 전남 곡성에서 일어난 정해박해를 배경으로 천주교 신자의 삶과 신앙을 그린 작품입니다. 국어국문학과 정병설 교수님이 적극 추천하셔서 읽게 되었는데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개신교 신자인 작가가 소설의 배경인 곡성에 정착하여 4년간 집필 끝에 완성한 이 책은 19세기 조선의 천주교 박해 속에 신앙 공동체가 어떻게 성장해 나갔는지 마치 곁에서 지켜본 것처럼 생생히 그려내고 있습니다. 김탁환 작가가 글쓰기 특강 차 재작년 학교를 방문했을 때 한 걸음에 달려가 책에 사인을 부탁했는데 다음과 같은 글을 써주셨습니다 "신은 기다리고 인간은 떠난다."❞
선량한 차별주의자
김지혜 창비 (2019)
❝ 2022년 아카데미상 수상작인 CODA는 청각장애인에 관한 감동적인 영화입니다. 그런데 최근에야 "청인"과 "농인"이라는 표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일본어를 못한다고 "일본어 장애인"이라는 부르지 않는 것처럼 "정상인"과 "청각장애인"이라는 표현보다는 구어를 사용하는 "청인"과 수어를 사용하는 "농인"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한국 경상도 중년 남성들이 외국에 가서 가장 당황스러워 하는 지점이 평생 처음으로 마이너리티가 되어 여성, 외국인, 장애인, 왼손잡이 등이 겪어 온 다양한 차별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저는 경상도 출신 중년 왼손잡이 남성입니다. 가끔 전공과 다른 길을 걷고 있는 학과 선후배가 있는데 저자인 김지혜 교수도 그 중 한 명입니다. 이 책은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선량한" 차별주의자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제공합니다. 누구나 차별의 대상이 될 수 있고, 또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를 차별한 적이 있을 수 있습니다. 박은빈 배우가 수상 소감에서 언급한 것처럼 각자가 가지는 고유한 특성을 "다름"이 아닌 "다채로움"으로 인식될 수 있는 세상을 바라면서 이 책을 추천합니다. ❞
빅데이터 베이스볼-20년간 실패한 팀은 어떻게 승자가 되었나?
트레비스 소칙 / 이창섭 번역 처음북스 (2015)
❝ 많은 분들이 제 경력중 "한국야구학회 회장"이라는 직책에 주목하곤 합니다. 원래 제가 어릴 때 꿈 중 하나가 야구 전력분석팀에서 일하는 것이었는데 작년에 롯데 자이언츠 자문을 맡으면서 잠시나마 그 꿈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작년 기준으로 한국 프로야구는 사상 최초로 천만 관중 시대로 돌입했습니다. 한때 중년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야구장에 20대와 여성의 비율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변화입니다. 그럼에도 고교야구 전성시대인 80년대 팬들과 비교해본다면 가장 큰 차이가 나는 지점은 아마도 세이버메트릭스로 대표되는 "숫자의 야구"를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야구팬은 아니더라도 『머니볼』(2011)은 들어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영화로도 제작되어서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빅데이터 베이스볼』은 20년째 리그 하위권을 맴돌고 있던 피츠버그 파이리츠가 어떻게 혁신을 통해 탈바꿈했는지를 다룬 이야기입니다. 피츠버그 파이리츠는 제가 공부한 카네기멜론이 있는 도시라서 가끔씩 야구관람을 가곤 했는데, 솔직히 고백하자면 주로 상대팀의 스타선수를 보기 위해서였던 것 같습니다. 이 책에서는 이렇게 만년 꼴지였던 피츠버그팀이 2013년 프런트의 대대적인 개편과 더불어 당시 생소했던 포수 프레이밍의 중요성을 기반으로 한물간 선수로 여겨졌던 마틴 러셀과 같은 선수를 영입하고 적극적인 수비 시프트를 통해서 20년만에 가을야구에 진출하게 되는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엮어내고 있습니다. 제가 작년부터 서울대 야구부 지도교수를 맡고 있는데 언젠가는 세이버메트릭스를 우리학교 야구부에도 접목시켜보고 싶습니다. 특히 2026년에는 동경대와 정기 교류전이 서울에서 열릴 예정이니 재학생들과 동문들의 많은 응원 부탁합니다. ❞
불확실성에 맞서는 기술
데이비드 스피겔할터 / 양병찬 번역 생각의 힘 (2025)
❝ 2003년까지 인류가 만들어낸 자료의 크기가 5엑사바이트 정도라고 하는데 요즘은 하루에 400엑사바이트가 생성된다고 하니 우리가 접하는 자료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정보의 홍수시대에 올바른 정보를 취사선택하는 것은 "건초더미에서 바늘찾기"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2015년 다보스 포럼에서는 기존의 교육에 포함되어 있던 문해능력, 수리능력, 과학지식에 덧붙여 디지털(데이터) 문해력을 새로운 교양 핵심역량으로 추가하였습니다. 이러한 데이터 문해력의 교육을 위해 저는 작년부터 『문제는 통계야, 빅데이터 시대의 데이터 문해력』이라는 교양 교과목을 개설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요즘 데이터 문해력에 관한 좋은 교양서적이 여러권 나와 있는데 그 중 딱 한 권을 뽑으라면 이 책을 주저없이 뽑을 수 있습니다. 저자인 데이비드스피겔할터는 캠브리지 대학교 Winton Professor of Public Understanding of Risk를 역임했으며 통계학자로서는 드물게 대중과의 소통에 큰 기여를 한 학자입니다. 코로나 시기에는 영국정부 자문과 언론 인터뷰를 통해 코로나에 대한 진실을 대중에게 명확하게 전달한 것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 책은 개인의 일상생활이나 정책 판단, 기후변화등 다양한 예시를 통하여 정보가 가지는 불확실성의 의미를 확률의 원리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특히 번역본을 읽다 보면 이해가 잘 되지 않아서 원본을 직접 찾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 양병찬님의 번역본은 믿고 볼 수 있는 책이라는 점에서 이 책은 더욱 추천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
숫자에 약한 사람들을 위한 통계학 수업
데이비드 스피겔할터 / 권혜승, 김영훈 번역 웅진 지식하우스 (2020)
❝ 제 또래 사람들에게 대학시절 배운 통계학에 대해 물어본다면 대부분 지루하고 이해하지 못할 공식만 기억에 남는다는 얘기를 하곤 합니다. 데이비스 스피겔할터의 이 책은 기존의 통계학 입문서와 전혀 다른 성격의 책입니다. 놀라울 정도로 수식을 최소한으로 사용하면서 통계학의 중요한 개념들을 흥미있는 사례를 들어서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리차드 3세의 유굴발굴에 관한 사례연구를 통해 베이즈 법칙이 영국의 법정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 보여주고, 연구윤리와 연구부정행위와 같은 기존의 통계학 입문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다양한 주제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 책을 기반으로 만든 K-MOOC 강좌 『데이터로 배우는 통계학』도 함께 보시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
Last Lecture
랜디 포시, 제프리 재슬로 / 심은우 번역 살림(2008)
❝ 책 제목을 듣고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강의』를 떠올리시는 분은 아마 제 또래가 아닐까 싶습니다. 제 모교인 카네기멜론 대학에서는 퇴임무렵의 교수님에게 학교생활을 회고하는 의미로 "Last Lecture"라는 타이틀로 강연을 요청하는 전통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인 랜디 포시 교수는 불과 40대 중반에 췌장암 말기로 시한부로 선고받고 정말 "Last Lecture"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저는 우연히 이 강의 관한 내용을 윌스트리트 저널에 실린 기사를 통해 알게 되었고 나른한 오후에 진척되지 않은 수많은 일을 미뤄고 카네기멜론 대학의 홈페이지에 올라온 강의 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잠깐만 보고 밀린 일을 하겠다는 다짐은 금새 잊어버리고 저는 강의에 빠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강의에서는 랜디 포시 교수는 본인이 어렸을 때 꾸었던 다양한 꿈에 대한 많은 장벽을 어떻게 이겨나갔는지 시종일관 아주 재미있게 얘기해 주고 있었습니다. 강의 말미에 랜디 포시 교수는 사실 이 강의는 아직은 어린 세 자녀들이 나중에 아빠를 기억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준비했다고 얘기합니다. 카네기 멜론 대학의 홈페이지 올려진 이 강의는 이 후 천만 명 가까이 보게 되고 이 이야기를 세상에 전한 월스트리트 기자 제프리 재슬로를 통해서 책으로 나오게 됩니다. 랜디 포시 교수가 얘기한 대목 중 특히 많이 공감했던 부분은 "장벽은 내가 얼마나 절실하게 원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존재한다"는 말이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랜디 포시 교수의 다양한 인생의 지혜를 배워서 앞으로 삶의 원동력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ㅣ마치면서
좋아하는 10권의 책을 고른다는 게 무척이나 힘들었습니다. 게다가 위에서 언급한 책 중 상당수가 단행본이 아니고 시리즈라서 실제로 추천한 책은 25권이 되었습니다.
사실 저에게도 독서 침체기가 있었습니다. 어느 순간 전공서적 외에는 마지막으로 무슨 책을 읽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때가 있었고, 어쩌다가 여유가 생기더라도 "읽을 책이 없다" 라는 핑계로 넷플리스를 보면서 시간을 보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TV에서 김영하 작가의 "읽을 책을 사는게 아니라, 산 책중에 읽는 것"라는 얘기를 듣고 내가 독서를 하지 않는 이유는 결국 핑계거리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에 마음에 드는 책이 보이면 일단 사두었고 시간이 있을 때 틈틈이 책을 읽고 있는 저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저희 집 서재에는 저의 손을 기다리는 읽지 않은 책들이 쌓여 있지만 여전히 교보문고에서 책을 주문할 때의 희열감은 변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도 서점에서 오는 택배를 저와 같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열어보는 즐거움을 느끼시기 바랍니다.
*지식인의 서재 서울대학교 빅데이터 기반 지식정보플랫폼 LikeSNU에서는 우리 사회 각 분야 지식인의 마음 속 서재에 꽂혀 있는 다양한 책들을 소개합니다. 두 번째 지식인의 서재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법의학교실 유성호 교수님의 서재를 소개합니다.
ㅣ 유성호 교수님 소개
유성호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법의학교실 교수
연구분야
법의학
저서
-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
- 「법의학자 유성호의 유언노트 」
- 「시체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
- 「법의학」
- 「죽음학교실 」
경력
-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석사
-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박사
- 미국 NIH 박사후 연구원
- 서울대학교 교수
- 서울대학교 의학도서관장
- 대한의학회 법제이사
- 대한법의학회 윤리이사
- 대검찰청 자문위원
- 서울고등법원 및 서울중앙지방법원 자문위원
ㅣ프롤로그
2025년 단풍이 아름다운 만추의 어느 날, “법의학 전문가의 시선으로 좋아하는 책들을 지식인의 서재라는 기고 형태로 소개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문득 웃음이 났습니다. 법의학자, 교수, 지식인, 독서가—이 네 단어가 한 문장 안에 나란히 붙어 있는 풍경이 낯설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죽음의 흔적을 읽는 사람이지, 삶을 경영하는 멋진 지식인의 모습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 단어들이 제게 주는 묘한 설렘도 있었습니다. ‘죽음’이라는 무거운 세계 속에서 살아가면서, 책이라는 또 다른 세계를 통해 균형을 유지해온 삶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법의학은 인간의 최후를 해석하는 학문입니다. 그 최후의 순간을 마주하면서, 저는 역설적이게도 책을 통해 더 완강하게 ‘삶’에 기대어 왔습니다. 책을 펼치고, 손끝으로 종이를 만지고, 빛의 각도에 따라 글자가 달리 보이는 순간마다—나는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됩니다.
이 글은 그런 의미에서, 죽음을 통해 삶을 배우는 직업을 가진 한 사람이 책을 통해 어떻게 균형을 잡아왔는지에 대한 조용한 기록입니다.
ㅣ서점, 종이책 그리고 삶의 온도
저는 몇 번의 시도 끝에 이북 리더기를 모두 타인에게 넘겼습니다. 부검대 위의 냉기 속에서 하루를 보내다 보면, 저녁에 집으로 돌아와 따뜻한 종이책을 펼치는 일이야 말로 제 삶의 온도를 회복시키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시신을 만질 때 느껴지는 ‘온도 차’는 의학적으로는 사망시각 추정의 단서이지만, 인간적으로는 삶과 죽음을 가르는 가장 직관적 감각입니다.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광택 없는 종이, 간혹 느껴지는 눌린 활자의 요철(凹凸), 오래된 책장 냄새 같은 것들은 디지털 화면이 결코 대체할 수 없는 ‘살아 있는 질감’을 줍니다.
종이책을 읽는다는 것은 결국 사라질 수밖에 없는 인간의 감각을 기록하는 일입니다. 삶을 다루는 가장 감각적 방식. 따라서 저에게 독서는 단순한 지식 축적이 아니라 감각의 재생입니다. 법의학이 죽음의 사실을 다룬다면, 독서는 삶의 감각을 되돌리는 일입니다.
ㅣ도서관, 그리고 죽음과 삶 사이의 작은 쉼표
저는 이번 가을부터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도서관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근사하게 새로 지어진 의학 도서관에 업무 차 들를 때면, 저는 종종 서가 사이에서 가만히 서 있는 저 자신을 발견합니다. 부검실에서 나온 직후에도, 근거 없는 위안처럼 책을 쳐다보게 됩니다. 왜일까요?
시신은 죽음의 이야기를 남기고, 책은 삶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도서관은 제게 죽음과 삶 사이의 숨구멍 같은 존재입니다.
이제는 아들뻘의 학생들의 대출기록에서 “뇌 과학, 불안, 마음, 인간관계, 죽음” 같은 키워드를 볼 때마다, 사회가 빠르게 변화하는 만큼 젊은 세대가 ‘인간 답게 사는 법’을 더 치열하게 찾고 있다는 사실을 느낍니다.
법의학적 분석이 삶의 민 낯을 드러낸다면, 책 읽기는 그 민 낯을 이해하고 위로하는 작업입니다.
ㅣ법의학자가 사랑한 10권의 책
-삶을 더 깊게 바라보게 만든 책들-
바닷마을 다이어리
요시다 아키미 애니북스 (2009)
❝ 요시다 아키미의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이미 영화로도 유명해져 많은 분들이 한 번 정도는 이름을 접해 보셨을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만화지만 지극히 문학적인 서사를 가진 작품으로, 저도 처음에는 단순한 가족 이야기 정도로 가볍게 펼쳤습니다. 그러다 최근 관계와 돌봄, 그리고 ‘가족의 형태’에 대한 글을 쓰는 과정에서 다시 읽게 되었는데, 예전과는 전혀 다른 무게로 이야기가 다가오더군요.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중심에는 “혈연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이 있습니다. 어느 날 갑작스럽게 나타난 13살의 이복동생 스즈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세 자매가 받아들이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작가는 이 관계를 과장하거나 극단적으로 그리지 않습니다. 대신 아주 조심스럽게, 일상의 대화, 집 밥, 바닷바람, 사소한 사건들 속에서 인간 사이의 온도와 거리를 천천히 보여줍니다.
이 작품이 흥미로운 이유는, 가족을 이상화하지도, 특정한 형태로 규정하지도 않는다는 점입니다. 요시다 아키미가 보여주는 가족은 완벽하지 않고, 어설프고, 흔들리고 때로는 실망스럽습니다. 그럼에도 서로에게 작은 자리를 내어주는 사람들입니다. 즉 ‘가족’이라는 단어가 사회, 제도, 혈연의 문제를 넘어 인간이 서로에게 어떤 방식으로 의지가 되고, 책임을 나누고, 삶의 일부를 함께 견디는가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됩니다.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돌봄의 윤리”입니다. 자매들은 특별히 도덕적이어서 스즈를 받아들인 것이 아닙니다. 단지 눈앞의 한 아이가 홀로 남겨진 상황에서 ‘그냥 지나치지 못했을 뿐’입니다. 이 지점에서 작품은 의외로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돌봄은 선택인가, 혹은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책임인가?”
오늘날 1인 가구, 비혼, 비혈연 가족이 늘어나고, 돌봄의 경계가 흐려진 사회에서 이 질문은 더욱 현실적인 의미를 갖게 될 것입니다. 우리 한국 사회가 여전히 ‘가족’을 혈연 중심으로 규정하는 문화 안에서 이 만화는 가족은 조건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방식으로 규정된다는 의미를 전달해 주고 있습니다.
사실 스즈가 자라면서 겪는 혼란과 성장은, 사실상 누구나 겪는 ‘정체성의 수선 과정’입니다. 자매들은 스즈에게 방향을 강요하지 않고 스즈가 넘어질 때 곁에 서 있어줄 뿐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혈연보다 더 깊은 신뢰를 만들어줍니다.
책을 덮고 나면, 이 작품이 보여주는 가족은 특별한 결단이나 인기 드라마에서 보이는 엄청난 반전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작은 식사, 함께 걷는 길, 계절의 변화,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우리는 천천히 가족이 됩니다. 누군가에게 기대고 누군가를 받아들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그 과정이 얼마나 조용하면서도 강력한 힘을 갖는지를 알려주는 작품입니다. 이 만화책이 마음에 들었다면 아직 완결이 나지 않았지만 우미노 치카의 『3월의 라이온』을 읽어 보기를 권합니다. ❞
→ 유성호 교수님이 건네는 또 다른 도서: 『3월의 라이온』
스토너
존 윌리엄스 알에이치코리아 (2020)
❝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는 처음 보면 매우 조용하고 단출한 소설처럼 보이지만, 읽고 나면 묵직한 여운이 오래 남는 작품입니다. 주인공 윌리엄 스토너의 삶은 극적인 성공도, 비극적 추락도 없지만, 그의 평범한 생애가 지닌 고요한 진실 때문에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소설로 자리 잡았습니다. 많은 분들도 아마 이 작품을 읽으며 “나도 살아내고 있을 뿐인 삶의 어느 순간을 마주한 듯한 느낌”을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스토너의 삶을 관통하는 핵심 질문은 아마도 성공이 아닌, 존엄하게 살아낸 삶이란 무엇인가일 것입니다. 스토너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부유하지 않고, 특별한 권력을 쥐지 않으며, 사회적으로 큰 업적을 남기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그는 책을 발견한 순간, 그리고 학문을 사랑하게 된 순간, 자신의 삶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조용하게 결정합니다. 이 작품의 진짜 주제는 ‘성취’가 아니라, 자신의 작은 신념을 한평생 붙드는 존엄의 방식에 가깝습니다. 이 소설의 가장 인상적인 점은, 그 무엇도 극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삶에서 오히려 깊은 감정이 흘러나온다는 사실입니다. 스토너는 행복하지도, 완전히 불행하지도 않은 상태로 생을 마칩니다. ‘손가락에서 힘이 빠지자 책이 고요히 정지한 그의 몸 위를 천천히, 그러다가 점점 빨리 움직여서 방의 침묵 속으로 떨어졌다.’ 그 마지막 순간에 느껴지는 감정은 패배나 공허가 아니라, 나는 나의 삶을 살았다라는 조용한 만족이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끊임없이 스펙, 커리어, 성취를 요구받는 시대 속에서, 스토너의 삶은 법의학을 하는 저에게 사회적 성공을 이루지 못해도, 타인에게 특별한 인정을 받지 않아도, 삶을 정직하게 마주하고 자신만의 조용한 기쁨을 지킨다면 그 자체로 충분하다는 메시지를 전해주었습니다. 우리의 삶이 비록 반짝이지 않아도, 충실한 삶은 충분히 빛날 수 있습니다.
이 책과 함께 추천작으로 고민했던 책은 오에 겐자부로의 『개인적인 체험』이었습니다. 한 인간이 자신의 삶과 책임에 정직하게 마주볼 수 있는 또 하나의 훌륭한 책입니다. ❞
→ 유성호 교수님이 건네는 또 다른 도서: 『개인적인 체험』
백년의 고독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민음사 (2000)
❝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은 세계문학의 고전으로 자리 잡은 작품이지만, 읽을 때마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내는 독특한 소설입니다. ‘기억’이라는 주제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작품에서 묘하게 낯설면서도 익숙한 감정을 발견하게 됩니다. 특히 애니메이션 코코에서 다루는 “기억되지 않는 존재는 두 번 죽는다”는 메시지를 떠올린다면, 마르케스가 구축한 부엔디아 가문의 세계가 훨씬 더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백년의 고독』에 등장하는 부엔디아 가문의 100년은 인간이 똑같은 실수를 세대를 넘어 되풀이하는 원형적 구조를 보여줍니다. 이름이 반복되고, 선택이 반복되고, 갈등이 반복되는 이유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기억의 부재입니다. 마르케스가 말하는 ‘고독’은 쓸쓸함이 아니라, 기억이 단절되고 관계가 해체된 공동체가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구조적 고립입니다.
이는 애니메이션 코코에서 가족의 기억 속에서조차 지워진 존재가 ‘최종적 소멸’에 이르는 장면과도 깊게 연결됩니다. 기억되지 않으면 존재는 유지될 수 없으며, 존재가 사라지면 같은 실수와 비극은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작품의 핵심은, 부엔디아 가문의 몰락이 특별한 사건 때문이 아니라 기록되지 않은 역사와 단절된 관계의 누적적 결과라는 점입니다. 서로에게 도달하지 못한 삶의 파편들, 전달되지 못한 이야기들, 잊혀진 고통이 세대를 거치며 형태만 달리해 되풀이됩니다. 이 비극의 구조는 급변하는 사회에서 점차 고립되어 가는 현대인의 모습, 기억의 전승이 약해지고 관계가 단절되는 오늘의 현실과도 닮아 있습니다. 책을 덮으면서 고독은 끝나지 않을 것처럼 느껴집니다. 우리가 서로를 기억하지 않는다면.
만약 이 책이 당신의 가슴에 와 닿았다면 사라마구의 『눈 먼 자들의 도시』를 추천합니다. 마르케스와 또 다른 사회와 인간 본성의 고민을 던져주는 명작입니다. 만약 애니메이션 코코를 보시지 않았다면 이 역시 꼭 보시기를 권합니다. ❞
→ 유성호 교수님이 건네는 또 다른 작품 : 『눈 먼 자들의 도시』
슬램덩크
이노우에 다케히코 대원씨아이 (2007)
❝ 슬램덩크는 단순한 스포츠 만화를 넘어서 세대와 국적을 초월해 꾸준히 사랑받는 작품입니다. 농구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그 안에는 성장, 동료, 한계의 극복, 자기 발견이라는 보편적 주제가 깊이 자리 잡고 있어, 독자가 어느 시점에서 읽든 다른 감정으로 다가오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아마 누구나 청춘의 어느 순간, 슬램덩크 속 인물들의 얼굴에서 자기 자신을 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어떤 분은 정대만에게 또 다른 이는 강백호에게.
주인공 강백호는 농구에 대한 재능보다 ‘인정받고 싶다’는 충동, ‘할 수 있을까’라는 불안, 실패에 대한 두려움 같은 아주 인간적인 감정들로 출발합니다. 하지만 그가 농구를 통해 조금씩 변화해 가는 과정은 기술적 성장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대면하는 성장에 더 가깝습니다. “왼손은 거들 뿐”이라는 상징적 장면도 결국, 화려한 스킬이 아니라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적절히 활용하는 강백호의 성장과정을 의미합니다.
그럼에도 작품의 가장 강렬한 부분은 강백호 개인의 성장보다도 ‘팀’이라는 공동체가 만들어내는 에너지입니다. 서로 다른 과거와 성격, 동기를 가진 선수들이 같은 목표를 향해 움직이는 순간, 그들의 서사는 단순한 스포츠 경기를 넘어 관계와 협력의 가치를 보여주는 이야기로 확장됩니다. 특히 송태섭의 고요한 의지, 정대만의 절실함, 서태웅의 고독한 재능, 채치수의 책임감은 모두 다른 방식의 성장 서사를 대표합니다.
『슬램덩크』가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이유는, 그 성장의 방식이 완벽함이 아니라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과정으로 그려지기 때문입니다. 보통의 만화라면 해피엔딩을 그려낼 이야기의 구도이지만 이 작품은 오히려 실패, 좌절, 부상, 한계 같은 요소를 그대로 드러내며, 그 안에서 다시 출발하는 인물들을 마지막 패배를 통해 보여줍니다.
그래서 이 만화는 단순한 ‘승리의 이야기’가 아니라 어떤 순간에 최선을 다해 살아 있었던 청춘의 기록으로 남습니다. 전국대회에서의 마지막 경기 결과보다 과정이 더 중요했던 그 순간은, 많은 이들의 마음에 오래 남아 있는 장면입니다.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성공 여부보다는 한 순간을 온전히 살아낸 우리의 시간이 얼마나 가슴 속 깊이 찬란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아다치 미츠루, 『H2』를 강력히 추천합니다. 『슬램덩크』가 뜨거운 에너지로 기억되는 청춘이라면, 『H2』는 나중에 문득 떠올렸을 때 가슴 한쪽이 조금은 따뜻해지고 조금은 처연해지는 청춘의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 유성호 교수님이 건네는 또 다른 도서: 『H2』
눈물을 마시는 새
이영도 황금가지 (2003)
❝ 눈물을 마시는 새는 한국 장르문학의 경계를 새롭게 연 작품으로, 단순한 판타지 서사를 넘어 인간과 공동체, 기억과 폭력의 구조를 깊이 탐구하는 드문 명작입니다. 네 종족—레콘, 인간, 도깨비, 나가—의 세계를 정교하게 쌓아 올렸지만, 그 안에 담긴 핵심은 종족 간 갈등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적 감정들, 특히 두려움, 기억, 오해, 구원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독자가 어느 시점에서 읽든 전혀 다른 질문을 던지는 텍스트이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케이건 드라카의 고독에서, 또 다른 이는 레콘의 명예나 도깨비의 ‘해석’이라는 잔혹한 논리 속에서 자기 삶의 모습을 발견하곤 합니다.
작품 전체에 흐르는 가장 강력한 감정은 ‘두려움’입니다. 레콘은 두려움 속에서 명예를 지키고, 인간은 자신들의 두려움을 신화와 이념으로 포장하며, 나가는 고립을 통해 두려움을 외면합니다. 이 두려움이 곧 폭력의 씨앗이 되고, 거대한 역사의 비극을 만들어내는 동력이 됩니다. 특히 인간들이 믿고 따르는 진실이 사실은 왜곡된 기억과 조작된 이야기였다는 설정은, 기억이 어떻게 지워지고 다시 쓰이며 폭력을 재생산하는지 보여주는 강력한 은유입니다.
그 가운데 돋보이는 것은 ‘타자화의 과정’입니다. 서로 다른 존재를 규정하고 하나의 속성으로 고정시키는 순간 폭력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작품은 끊임없이 드러냅니다. 네 종족의 특징처럼 보이는 것들도 결국 역사적 상처와 누적된 오해가 만들어낸 결과일 뿐, 본성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 작품은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드러냅니다. 법의학자의 시선으로 읽자면, 『눈물을 마시는 새』는 사건의 초기 서사—오류, 편견, 왜곡—가 이후의 판단 전체를 흔드는 현실의 구조와도 유사한 면모를 보여줍니다. 기억이 잘못 기록되면 공동체 전체가 같은 비극을 반복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이 소설의 가장 인상적인 면은 개별 캐릭터가 지닌 인간적 서사입니다. 케이건 드라카의 상실과 집착, 레콘의 장엄한 명예, 도깨비의 잔인한 논리, 나가의 깊은 고독은 판타지 속에서 오히려 더 인간적입니다. 서로 다른 존재들이 상처와 의무, 기억을 끌어안은 채 나아가는 과정은 장르를 넘어 보편적 울림을 줍니다.
『눈물을 마시는 새』가 일부 독자에게 명작이라고 평가되는 이유는 완벽한 세계를 구축했기 때문이 아니라 불완전한 존재들이 어떻게 살아남고 서로를 이해하려 하는지를 집요하게 파고들기 때문입니다. 이는 단순한 모험담이 아니라 두려움과 잘못된 기억이 만들어낸 세계 속에서 각자가 어떻게 자기 길을 찾는지에 대한 서사입니다.
저는 이 작품을 강력히 추천합니다. 반지의 제왕과 같은 스케일은 아니지만 기억과 두려움, 관계와 책임이라는 인간의 근원적 문제를 가장 드라마틱한 방식으로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 책이 마음에 드셨다면 후속작인 이영도, 『피를 마시는 새』를 강력히 추천드립니다. 케이건 드라카 이후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 유성호 교수님이 건네는 또 다른 도서: 『피를 마시는 새』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 청아 (1989)
❝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단순한 회고록이나 전쟁 기록을 넘어, 인간이 가장 비인간적인 조건 속에서도 어떻게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지를 탐구하는 철학적 보고입니다. 저자는 아우슈비츠와 여러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경험을 바탕으로, 인간이 고통 속에서 어떻게 자기 존재를 지켜낼 수 있는지, 그리고 절망의 한복판에서 무엇이 인간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지를 정면으로 묻습니다.
프랭클은 극한 상황을 견디게 하는 힘이 ‘쾌락’도 아니고 ‘권력’도 아니라 의미를 향한 의지라고 말합니다. 수용소에서 모든 것을 빼앗긴 사람들도 단 한 가지, “이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라는 태도만큼은 스스로 선택할 수 있었고, 이 선택이 그들의 생존 여부를 가른 핵심 요소였다는 사실은 지금 읽어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기억에서, 누군가는 자신이 완성해야 한다고 믿었던 사명에서, 또 누군가는 인간으로 남아 있으려는 작은 행동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합니다.
이 책의 강점은 프랭클이 고통을 미화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는 수용소의 참혹함을 차분히 있는 그대로 서술하면서도, 그 안에서 인간 존엄이 어떻게 파괴되고 어떻게 다시 붙들리는지를 냉철하게 분석합니다. 타인의 삶과 죽음, 그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마지막 선택의 흔적들은 결국 인간이 어떻게 의미를 구축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기도 합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가 시대를 넘어 독자들에게 계속 사랑받는 이유는,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이 결코 특정한 시대나 특정한 사건에만 해당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삶의 어느 순간에는 감당하기 힘든 고통 앞에 서게 되고, 그때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피할 수 없습니다. 프랭클의 대답은 단순하지만 단단합니다. 삶의 의미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고통의 순간에도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저는 가끔 제 인생의 의미를 찾지 못할 것이라는 공포에 휩싸이기도 합니다. 그럴 땐 이 책을 다시 읽곤 합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절망의 한복판에서도 인간이 어떻게 존엄을 지킬 수 있는지 또한 인생의 의미 추구 그 자체의 노력에 대한 희망을 목격하게 됩니다. 또한 고통을 바라보는 태도 하나가 삶 전체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은 오늘의 우리에게도 충분히 적용될 수 있다고 봅니다.
죽음의 수용소를 읽은 후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읽기를 권합니다. 프랭클이 “극한 상황에서도 존엄성을 갖는 인간”을 말한다면, 아렌트는 “극한 상황에서도 생각하지 않는 인간”이 벌이는 악을 이야기해줍니다. ❞
→ 유성호 교수님이 건네는 또 다른 도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칼 세이건 사이언스북스 (2022)
❝ 칼 세이건의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은 비이성적인 믿음, 음모론, 그리고 과학적 문맹이 만연한 현대 사회에 던지는 준엄한 경고입니다. 이 책은 미신, 사이비 과학,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맹목적인 신념이 왜 위험한지 파헤치며, 이에 맞설 ‘비판적 사고’의 중요성을 역설합니다. 세이건은 단순히 비과학적인 주장을 조롱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복잡한 과학적 사실보다 신비롭고 자극적인 음모론에 현혹되는 사회적, 심리적 기저 원인을 깊이 탐구합니다.
그가 가장 강력하게 우려한 지점은 “과학의 부재가 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한다”는 통찰입니다. 검증되지 않은 정보, 공포를 자극하는 가짜 뉴스, 과장된 주장이 여론을 지배하게 되면 합리적인 의사 결정 과정이 마비되고 결국 공동체가 무너질 수 있습니다. 이는 정보의 과부하와 사회적 분열을 겪는 오늘날의 현실과 정확히 맞닿아 있는 예언과도 같습니다.
세이건은 이러한 위험 속에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강력한 도구로 ‘헛소리를 구별하기 위한 사고의 기술’을 제시합니다. 그가 예견한 세상은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로 완성된 “유령이 출몰하는 세상”의 완벽한 재현입니다. 과학적 사실보다 자극적인 가십이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음모론이 사회를 좀먹는 현실에서 이 책은 단순한 과학 교양서를 넘어,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아가는 지적 생존을 위한 필수 안내서라 할 수 있습니다.
책 전반을 관통하는 그의 메시지는 묵직한 울림을 줍니다.
“우리는 과학을 이해하지 못한 채, 과학기술 문명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것은 위험한 조합이다.” 이 책은 그 위험천만한 조합 속에서 합리적인 사고를 유지하려는 모든 이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지적 방어 체계가 되어줄 것입니다. 혹시 이 책을 읽고 더 자세하게 이 주제에 대해 공부하고 싶은 분에게 조 피에르의 『집단망상』 이라는 책을 권해드립니다. 칼 세이건의 문제 의식을 더 발전된 뇌과학과 정신의학으로 설명하는 수작입니다.❞
→ 유성호 교수님이 건네는 또 다른 도서: 『집단망상』
백야행
히가시노 게이고 재인 (2016)
❝ 히가시노 게이고의 『백야행』은 범죄소설의 형식을 빌리고 있지만, 실제로는 인간의 상처가 어떻게 운명이 되고, 그 운명이 다시 고독을 낳는가를 집요하게 탐구하는 심리적 비극에 가깝습니다. 사건의 퍼즐을 맞추는 재미가 분명 존재하지만, 이 작품의 핵심은 범죄의 진범을 찾는 데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소설은 “어린 시절의 어둠이 얼마나 길게, 얼마나 잔혹하게 한 사람의 삶을 지배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독자에게 던집니다.
두 주인공의 삶은 어린 시절 겪은 폭력과 상처에서 이미 방향이 정해져 버린 듯합니다. 그 사건은 단순한 트라우마가 아니라, 그들이 따뜻함을 체험할 기회를 영원히 앗아간 기점이었습니다. 히가시노는 이들을 선악으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 택했던 방식이 얼마나 비틀리고, 동시에 얼마나 슬픈가를 보여줄 뿐입니다. 그래서 『백야행』은 악인의 탄생을 다룬 소설이라기보다, 빛을 모른 채 자라난 존재들이 어떻게 세상을 버텨내는가를 기록한 잔혹한 성장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법의학자는 현실에서 『백야행』의 주인공과 비슷한 이들을 종종 마주하게 됩니다. 끔찍한 사건을 앞에 두고 “왜 이런 범죄를 저질렀는가”를 묻지만, 어느 순간 “그는 왜 다른 선택지를 갖지 못했는가”라는 더 깊은 질문을 하게 되는 경우입니다. 두 주인공 역시 범죄를 저지른 ‘악인’이 아니라, 상처와 결핍, 고립, 잘못된 보호의 누적이 만들어낸 구조적 비극의 산물에 가깝습니다. 범죄의 기원은 개인의 도덕성보다 환경, 관계의 단절, 기억의 왜곡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히가시노는 문학적으로 강렬하게 제시합니다.
이 소설의 힘은 이런 구조적 독해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서늘한 분위기, 절제된 문장, 여백과 암시로 이루어진 서사 방식은 독자로 하여금 “말해지지 않은 이야기”를 상상하게 만듭니다. 두 주인공이 거의 마주치지 않음에도 서로의 그림자처럼 얽혀 살아가는 방식은 관계의 기묘함과 긴장감을 만들어내며 작품을 끝까지 끌고 갑니다.
결국 『백야행』은 범죄의 미스터리를 푸는 소설이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고독을 견디는가에 대한 차갑고도 아름다운 탐구로 귀결됩니다. 책장을 덮고 난 뒤에도 한동안 두 주인공이 걸어갔던 ‘빛 없는 길’이 마음속을 오래 서늘하게 합니다. 그 길은 비극이지만 동시에 인간의 연약함과 작은 희망의 가능성까지 생각하게 만드는 강력한 서사적 경험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또 다른 명작을 찾고 있다면, 『용의자 X의 헌신』을 꼭 책으로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이 두 작품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인간의 사랑과 죄, 헌신과 절망을 탐구한 깊이 있는 쌍둥이 같은 작품입니다. ❞
→ 유성호 교수님이 건네는 또 다른 도서: 『용의자 X의 헌신』
어떻게 죽을 것인가
아톨 가완디 부키 (2015)
❝ 하버드 의대의 외과의사이자 공중보건학자인 아툴 가완디가 쓴 이 책 역시 이미 너무나 널리 알려져 있어 많은 분들이 한번쯤 들어 보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저 또한 2015년 국내 번역본이 처음 나왔을 때 큰 기대를 가지고 읽었고(참고로 원서도 문장이 명료하고 간결해 영어 읽기에 아주 좋습니다), 진심으로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가완디는 ‘죽음을 의학의 실패로만 여기는 관점’이 어떻게 현대 의학과 의료현장의 문화를 왜곡시켜 왔는지, 그리고 이로 인해 인간의 마지막 순간이 얼마나 불필요하게 고통스럽고 비인간적인 방식으로 소모되어왔는지를 생생한 임상사례들과 자신의 실패담을 통해 고백하듯 그려냅니다. 특히 말기 환자에게 끝없이 시도되는 연명치료, 환자 의사를 묻지 않은 처치, 가족의 불안과 의료진의 책임감이 뒤엉켜 만든 ‘과잉의료’의 문제를 날카롭게 들여다보는 그의 시선은 그 자체로 참담하면서도 통렬합니다.
처음 읽었을 때는 의학적·윤리적 통찰이 흥미롭게 다가왔는데, 다시 읽으면서 좀 더 무거운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제가 매일 사망 원인을 해석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 살아가다 보니, “어떻게 죽는가”라는 문제는 단순히 말기 환자의 개인적 선택을 넘어 우리 사회가 어떤 ‘죽음의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는지 묻는 질문처럼 느껴졌습니다.
특히 초고령사회로 들어선 오늘의 한국 사회에서, 병원, 가정, 요양시설, 법, 제도 등이 뒤섞인 임종의 풍경은 더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 책이 던지는 메시지—죽음은 패배가 아니라 삶의 완성이다, 그리고 그 완성의 조건은 의료가 아니라 인간의 가치다—는 누구에게나 다시 한번 곱씹어볼 만한 울림을 줍니다.
‘죽음의 순간을 인간 답게 만드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그리고 죽음을 실제로 다루는 저 같은 의학도 그리고 생명과학을 전공하는 이들에게도 여전히 유용하고 필요한 책입니다. 이 책을 읽고 죽음과 관련된 진중한 의사의 에세이를 원하신다면 서울대학교병원 김범석 교수의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를 권유드립니다. ❞
→ 유성호 교수님이 건네는 또 다른 도서: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죄와 벌
도스토예프스키 문예 (2013)
❝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은 이미 너무나 유명한 고전이라 많은 분들이 한번쯤 읽어봤거나, 적어도 제목 정도는 익히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저 역시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에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의 전율과 감동을 잊지 못합니다. 다만 그때는 이 작품이 던지는 윤리적 질문의 깊이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몇 번을 다시 읽을 때마다 이전과는 다른 훨씬 더 복잡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게 되었습니다.
『죄와 벌』의 중심에는 “도덕과 범죄 사이의 균열”이라는 오래된 질문이 자리합니다. 도스토옙스키는 라스콜리니코프라는 인물을 통해, 인간이 흔히 말하는 ‘정당한 목적’이 실제로는 얼마나 위험한 자기기만이 될 수 있는지를 정면으로 묻습니다. 주인공은 스스로를 “비범한 인간”이라고 규정하며, 사회의 부정의나 도덕적 허구를 넘어서는 존재라고 여겼지만, 살인을 저지르는 순간 그 모든 이론적 정당화는 허물어지고, 남는 것은 죄책감과 자기파괴 뿐임을 보여줍니다.
이 소설의 가장 뛰어난 부분은, 범죄의 행위 자체보다 범죄 이후 인간이 어떻게 무너져 가는가를 집요하게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라스콜리니코프의 불면, 불안, 자기합리화, 도피와 혼란, 그리고 결국 자신이 만들어낸 논리가 더 이상 자신을 지탱해주지 못하는 지점까지의 과정은, 심리학적 소설을 넘어 인간 내면의 어두운 구조를 부검한 기록에 가깝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작품이 ‘범죄의 처벌’보다 ‘죄의 자각과 고백’이 인간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가에 더 집중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도스토옙스키는 형벌보다 더 강력한 것은 결국 인간 내부의 양심이며, 그 양심이 제대로 작동할 때 비로소 인간은 다시 사회와 자신에게로 돌아올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 지점은 오늘날 법학·범죄심리학·윤리학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논쟁으로 남아 있다고 봅니다.
저는 이 책이 단지 19세기 러시아의 한 살인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을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사회적 불평등, 도덕적 무기력, 경제적 취약성, 그리고 사회로부터의 고립감—라스콜리니코프가 범죄에 이르는 심리적 배경은 2020년대의 한국 사회에서도 익숙한 키워드들입니다. 인간이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그 고립 속에서 극단적 판단을 내리는 과정은 지금 우리의 사회적 풍경과도 겹쳐 보였습니다.
『죄와 벌』은 오래된 고전이지만, “인간은 왜 자신의 논리로 자신을 파괴하는가” “사회는 어떻게 한 개인의 절망을 방치하는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봅니다. 따라서 이 작품은 단지 오래된 고전으로서의 위치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유효한 인간학적 보고서이며, 누군가의 내부에서 벌어지는 ‘도덕적 붕괴’와 ‘회복의 가능성’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책입니다. 이 책을 읽은 후에는 반드시 같은 작가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어야 합니다. 절대 후회하지 않을 선택이 될 것입니다. ❞
*지식인의 서재 :서울대학교 빅데이터 기반 지식정보플랫폼 LikeSNU에서는 우리 사회 각 분야 지식인의 마음 속 서재에 꽂혀 있는 다양한 책들을 소개합니다. 첫 번째 지식인의 서재로 우리 대학 동문이자 숭실대학교 정보사회학과 교수인 정인관 지식인의 서재를 소개합니다.
| 1. 프롤로그
2025년 새해 벽두, “애서가이자 사회학 전문가인 교수님께 <지식인의 서재> 1호 글을 청탁”한다는 도서관 담당관 선생님의 이메일을 확인하고 잠시 묘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애서가’, ‘전문가’, ‘지식인’이라는 단어가 저를 표현하기엔 조금 과장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아니, 분명 그 단어들은 제 스스로 그렇게 보이길 바라는 상(image)이긴 하지만, 그러한 전략이 나름 ‘성공적’이었음을 이메일을 통해 확인한 순간 오히려 그 상과 현실의 간극 사이의 심연에 빠져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전문가’의 사전적 정의는 “어떤 분야를 연구하거나 그 일에 종사하여 그 분야에 상당한 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입니다. 저는 학부부터 대학원까지 사회학을 공부해서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상당한 지식과 경험을 갖췄다고 말하기는 민망합니다. 전공분야인 불평등에 대한 제 낡은 지식이 어디선가 들통이 날 것 같아 깊이 있는 질문이라도 나올려 치면 줄행랑을 친지가 오래입니다. 한편 ‘지식인’의 사전적 정의는 “일정한 수준의 지식과 교양을 갖춘 사람”입니다. 오랫동안 이것저것 들추다보니 어떤 분야에 대해 얄팍한 지식을 갖추고 있긴 하지만 기초적이면서도 중요한 많은 영역에 있어서는 기본적인 소양도 갖추지 못했음을 확인할 때가 많습니다. 상황이 이렇기에 스스로를 ‘지식인’이라고 명명하는 것은 진짜 지식인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애서가’는 “책을 매우 좋아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한국어 위키백과의 ‘애서가’항목을 찾아보니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애서가는 독서를 좋아하는 것을 떠나 책 자체를 애호하고 수집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을 가리킨다”고 적혀 있네요. 애서가라면 마땅히 책을 수집하는 것을 넘어 그것을 빠짐없이 읽는 사람을 가리킨다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수집에 방점이 찍혀있다니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 칭호(!)를 받아들이기로 합니다. 이렇듯 두서없는 반성적 사유로부터 시작된 이 글은 어느 애서가가 쓰는 책 수집의 기록이자 변명이며, 다른 사람들은 어떤 책을 읽는지 바라보는 관찰기이자 정기적으로 책 몇 권씩 구입해 책상에도 쌓아놓고 가끔은 손에 쥐고 다니면 좋지 않겠냐고 설득하는 호소문이기도 합니다. 대한민국에서 두 세 손가락에 꼽힐 만큼 많은 책을 보유하고 있는 매력적인 곳(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에서 제공하는 콘텐츠의 일부(게다가 1호라니!)로 제 이야기를 독자들과 나눈다고 생각하니 민망함을 동반한 ‘묘한 감정’은 어느새 사라지고 들뜬 마음만 남았네요.
| 2. 책 구경, 책 구입, 책 읽기
어린 시절 저희 집에는 책이 정말 많았습니다(사실 저의 기여로 인해 지금은 더 많은 책들이 있습니다). 책장을 기어 올라가다 떨어져 엉덩방아를 찧었던 기억, 여기저기 쌓여있는 책들을 무너뜨린 기억, 한글을 처음 배우며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을 한자 한자 읽었던 기억이 아련하게 남아있습니다. 그 중 한 권인 <영구혁명론>의 제목을 또박또박 읽으며, 당시 인기 절정이었던 개그 캐릭터인 ‘영구’에 대한 책인 줄 알고 “영구가 왜 혁명을 해?”라고 부모님께 여쭤봤던 적도 있습니다(과연 ‘혁명’의 뜻은 알았을까요?). 이렇듯 어릴 적부터 책이라는 ‘물질’은 제겐 자연스러운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사회학 연구를 하면서 한 사람의 ‘문화자본’을 측정하는 문항 중 하나가 ‘어린 시절 집에 얼마나 많은 책이 있었는지’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문화자본이란 개인이 특정한 사회적 지위를 얻거나 유지하기 위해 사용되는 지식, 기술, 교육, 그리고 문화적 취향을 포함한 비물질적 자원을 의미합니다. 책에 대한 물질적 익숙함은 그것을 펼쳐보고 그 안에 있는 지식을 습득하는 행위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며, 이렇게 습득된 지식은 한 사람의 학업 성취와 사회적 성공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자라는 과정에서 책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책이 있는 공간에서 편안함을 느끼게 된 저는 부모님을 따라 서점에 갈 때면 그 안에서 오랫동안 잘 머물렀습니다. 책 표지를 비교하며 이 책보다 저 책이 더 예쁘게 잘 만들었다는 평가를 했고, 책 안쪽을 들여다보며 작가의 약력을 읽기도 했습니다. 서점에 왔으니 책 한권 골라보라는 부모님의 제안에 가장 그럴듯한 표지의 책들을 집어들기도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어린 나이에 읽기엔 지적으로 무리인 책들도 많았지만 부모님께선 제가 고른 책들을 (그것이 미성년자가 보기에 부적절한 것만 아니라면) 검열하지 않고 사주시곤 했습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자 어머니께서 손에 쥐어주신 오천 원이나 만 원권 한 장을 손에 쥐고 혼자 서점에 갈 때도 많았습니다. 그렇게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을 지내다보니 80권짜리 해적판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조정래의 <태백산맥>과 박경리의 <토지>, 도올 김용옥의 책들, 심지어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 전문적인 책들(대표적으로 린 챈서의 <일상의 권력과 섀도매저키즘>이라는 책)이 책장을 가득 채우게 되었습니다. 책장의 빈칸에 책을 한권씩 꽂을 때마다 느낀 희열은 수십 권의 위인전 전집이나 백과사전이 한 번에 책장을 채우던 것과는 질적으로 달랐습니다. 주로 베스트셀러였던 책들이 제 방에 쌓여가자 저 안엔 무슨 내용이 담겨 있기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찾아 읽는지 궁금해졌습니다. 구입한 책들의 일부를 그렇게 읽기 시작했습니다. 세 가지 요소의 화학적 결합이 제게 책읽기의 즐거움을 선사했습니다. 내용, 책의 질감, 종이 냄새가 그것입니다.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작가의 필력, 조금은 까끌까끌한 종이와 활판인쇄 특유의 요철(凹凸)감각, 시간이 깊이에 따라 그 향이 다른 종이 냄새는 글의 내용에 입체감을 더해줬고 어떤 책에 대한 기억을 저장하는데 있어 어느 하나 빠뜨릴 수 없었습니다. 책의 어디쯤에 어떤 내용이 있었는지 감각적으로 기억하는 습관도 생겼는데, 아직도 종종 ‘거기 책 중간 부분 접힌 곳 오른쪽 위’란 식으로 제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의 위치를 제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서재와 연구실에 책이 쌓여가면서 이북을 통해 책을 읽으련 시도를 해본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제게 있어 책의 물질성이 독서행위의 한 축이며, 매끈한 화면을 통해 활자를 읽는 것으로는 독서의 기억을 완성할 수 없음을 깨닫게 했습니다. 세 번의 시도과정에서 구입한 세 개의 이북 리더기는 이러한 깨달음을 거쳐 다른 누군가의 것이 되었습니다.
| 3. 도서관, 빌려 읽기
사실 지금 제게 책은 웬만하면 ‘사야하는 것’입니다만 부지런히 빌려 읽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21세기의 첫해 대학에 입학해 중앙도서관에 처음 발을 내딛었던 3월의 어느 날, 저는 그 안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방금 전까지 인문학 서가를 거쳤던 것 같은데, 별 생각 없이 걷다보니 알 수 없는 자연과학서적의 숲이 저를 내려다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뭔가 불친절하고 거대한 공간에 갇혀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던 순간, 이 책들도 어차피 나랑 비슷한 지력을 갖춘 사람들이 펼쳐보는 것이란 근거 없는 자신감에 하얀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자인, 블랙홀과 관련된 책을 한 권 뽑아 대출했습니다. 몇 달이 지나 절반도 읽지 못한 채 지각 반납해 연체료까지 내야했으나 이미 수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쳐 간 게 분명한 그 책에 묻어 있는 흔적, 서가의 수많은 다른 책들과 이웃해 살며 묻은 도서관 특유의 향기는 새 책들을 모아놓은 서점에서 만날 수 있는 그것과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이후 자주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서가 끝 창문 앞쪽에 놓여 있는 의자에 앉아 책 읽기를 즐겼습니다. 여담으로 이때 어떤 학생이 창문 밖으로 읽던 책을 던지는 것을 보았는데, 같은 장면을 훗날 학과는 다르지만 저와 동갑이고 동기인 서울대 출신 감독이 만든 어떤 영화(<들개>라는 제목의 독립영화입니다)에서 마주하기도 했습니다. 술술 읽히는 책보다는, 그렇지 않아서 도서관에 오래 머무를 수 있는 책들을 주로 빌렸습니다.
저보다 앞서 이 책을 읽은 사람은 누구일지,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또 다른 어떤 책들을 읽을지 무척 궁금했습니다(LikeSNU 시스템의 출범을 보며 남다른 감회에 젖었던 이유입니다). 도서관이 전산화되기 전에는 책 맨 뒤에 대출카드가 붙어 있었는데 그 카드에는 빌린 사람의 이름과 대출 날짜 및 반납 날짜가 시간 순서대로 적혀있었습니다. 2001년에는 이미 중앙도서관도 전산화가 되었지만 아직 제거되지 않은 대출카드가 붙어 있는 오래된 책들을 종종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 목록에서 저보다 20년 앞서 같은 책을 빌려 읽은 교수님의 이름을 확인할 때면 도서관이란 공간이 더 친근하고, 좁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학부생과 대학원생, 그리고 연구원 신분으로 서울대에 머물렀던 기간은 군 휴학을 제외하고도 8년인데 그 뒷부분까지도 중앙도서관에서 종종 길을 잃곤 했습니다. 다만 어느 순간부터는 길을 잃어버려도 더 이상 무섭지 않았습니다. 나가는 길을 찾으려하기보단 ‘아직도 처음 와본 공간이 있다니’란 감탄을 내던지고, 한 구석에 앉아 눈앞의 아무 책이나 펼쳐보기도 하고, 손에 쥐고 있던 책을 읽기도 했습니다. 최근에 업무차 중앙도서관에 들렀다가 서가의 꽂혀있는 책들을 보며 오래전 제가 읽었던 책들 중에도 지금 누군가가 읽고 있는 게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떨리기도 했습니다. 제 마음과는 별개로 사실 여러 통계수치는 오늘날 사람들이 과거에 비해 책을 덜 읽고 있다고 말합니다. 대학생들도 다르지 않습니다. 굳이 책을 읽지 않아도 더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게 정말 많은 세상입니다. 읽을 것도, 빠르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통로도 정말 많아 책을 읽는 것의 효용성이 점차 평가절하 되는 디지털 세상에서 책, 그 중에서도 종이책의 미래는 불투명해보입니다. 흥미로운 현상은 종이책을 읽는 것이 낡고 드문 행위가 되어감에 비례하여 종이책 독서가 힙(hip)한 행위이자 타인과의 ‘구별짓기’의 대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인스타그램에 올릴만한(instagrammable) 예쁜 책을 찾는 사람들과, 이에 맞춰 리커버북을 출간하는 출판사들의 모습을 보며 종이책의 미래에 대한 작은 희망을 느껴봅니다.
| 4. 2024년의 서울대 학생들은 어떤 책을 읽었을까?
문득 요즘 후배들은 어떤 책을 즐겨 읽을지 궁금했습니다. 서울대 도서관의 ‘2024년 독서 트렌드 데이터’파일을 살펴보니 학부생 최다 대출도서 10위 안에 열 권 중 일곱 권이 문학작품, 한권은 회고록, 한권은 과학 에세이(어쩌다보니 저자분과 유튜브를 한 편 같이 찍은 적이 있어 더욱 반가운 마음입니다), 다른 한권은 심리 관련 책이네요. 역시 전공을 뛰어넘어 가장 소구력이 있는 건 문학작품, 그 중에서도 소설이었습니다. 연말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학부생 최대 대출도서 1위는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이 2025년 이러한 독서 트렌드를 한층 강화시킬지 궁금해집니다. 제가 읽어본 책도 여덟 권이나 되니(자랑 맞습니다) 혹시라도 학생들을 만나면 뭔가 나눌 수 있는 대화의 고리가 있겠구나 싶은 생각에 절로 기분이 좋아집니다. 스무 해 전에도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와 한비야의 여행기가 최고 인기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황석영, 조정래 등의 소설이 오랫동안 수많은 학생들의 손을 탔던 기억도 생생합다. 학부 1학년 대출도서 9위가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인걸 보며 좋은 책은 시대를 넘어선다는 교훈을 떠올립니다. 초점을 학술서적으로 한정했을 때 최상위권에 있는 <일반통계학>과 <미적분학>, <맨큐의 경제학>, <서양음악사>도 여전히 반갑습니다. 기분 좋은 의미에서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학부생이나 대학원생이나 3월에 총 대출권수가 가장 많은 것도 눈에 띕니다. 학기 초라 교재를 대출해서라고 하기엔 9월보다 월등하게 높은 수치입니다. 캠퍼스에 낭만도 다시 살아나고, 책 좀 읽어야지 하는 다짐도 들어서 일까요? 세월 저편의 저도 그랬던 것 같아 잠시 혼자 미소지어 봅니다. 사람이 사는 모습, 그리 다르지도 않고 잘 변하지 않단 생각에 마음이 편해집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네요. 문학 이외의 대출도서를 살펴보면 인공지능, 뇌과학, 불안, 마음, 죽음, 친화력과 같은 단어가 들어간 책들로 가득합니다. 인간 내면에 대한 관심의 증대, 빠른 사회변화로 인한 불안감도 크지만 그 안에서 사람들과 관계를 잘 맺고 싶은 마음 같은 것들이 느껴지는데 이건 20년 전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라 사회학자에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을 남깁니다.
| 5. 내가 좋아하는 10권의 책
유학시절 페이스북에서 인생 책 10권을 소개하는 릴레이가 펼쳐진 적이 있습니다. 지인이 저를 태그 했길래 저도 목록을 남긴 적이 있는데, 유학시절이라 ‘엄근진’해서였을까 기초 사회 통계 교재, 불평등관련 교과서도 포함시키는 ‘만행’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이번 원고청탁 과정에서도 10권의 책을 소개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도서관에서 훌륭하게 구축한 LikeSNU상에서 책들의 네트워크를 확인해보려 한다는 야심찬(!) 계획도 들었습니다. 제 전공분야 책 10권을 추천하면 그림은 명확하고 멋지게 나올 거라 확신합니다. 전문가임은 극구 부인하나 어쨌든 ‘사회학자’타이틀을 달고 사는 입장에서 불평등 관련 도서 10권을 적어낼 준비(이게 아마 담당자 선생님께서 애초에 생각했던 방향이 아니었나 싶네요)를 끝마치고 원고 첫 장을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글을 쓰다 보니 어느새 저는 40대 사회학자가 아니라 ‘아직 거기에 사는’(요새 데이식스 노래에 푹 빠져 삽니다. 이해해주세요) 20대의 기억으로 빠져 들어갔습니다. 그때 별 생각 없이 집어 들었다 밤을 새며 읽었던 책, 작정하고 집어들었으나 다 읽는데 1년이 넘게 걸린 책, 이런 책을 쓸 수 있는 사회학자가 되고 싶단 마음이 들게 해준 책, 이런 책들이 쌓여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여전히 지식인은 아닌) 제가 된 게 아닌가 싶네요. 이렇게 생각하니 LikeSNU 책 네트워크가 하나로 연결되지 않는, 고립된 노드(책)들이 둥둥 떠 있는 그런 독서의 궤적도 아름다운 게 아닐지, 효율성이나 지식의 축적만으로 이해할 수 없는 잡식이 주는 풍요로움을 적어도 대학시절에는 권장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듭니다. 2025년 1월 제 기억을 스치고 지나가는, 아니 그 기억 속 어디에 파묻혀 제 생각과 행동에 조금씩 묻어나오는 책 열권을 살짝 소개해드리겠습니다.
1~2) 조은, <사당동 더하기 25>, <도시빈민의 삶과 공간>
사회학자 조은의 <사당동 더하기 25>는 한국사회의 하층계급을 대변하는 정금순 할머니 가족 3대에 걸친 빈곤의 기록입니다. 전쟁, 재개발을 거치며 늘 밀려나야 했던 이 가족의 연대기는 대한민국의 수립과 성장의 연대기이며, 그 안에서 잊힌 사람들의 기록입니다. 또 ‘한강의 기적’이란 서사에 가린, 지극히 예측 가능한 계급 재생산의 기록이기도 합니다. 저자는 1980년대 중반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철거가 예정된 사당동의 무허가 주택에 사는 이들을 연구 대상으로 만나게 됩니다. 정할머니 가족은 그들 중 하나였습니다. <도시빈민의 삶과 공간>은 그때의 기록을 담고 있는 책입니다. 그렇게 시작된 저자와 이 가족의 인연은 지금까지 40여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따뜻한 시각으로 차가운 현실을 보여주는,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사당동 더하기 25>에는 저자가 직접 연출한 ‘사당동 더하기 22’란 제목의 DVD가 붙어 있습니다. <도시빈민의 삶과 공간>을 처음 읽었던 건 2002년 봄, 장소는 인문대 2동 앞 벤치였습니다. 제 삶의 방향이 어렴풋하게나마 결정된 순간이었습니다.
3) 스티븐 레비츠키, 대니얼 지블랫,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하버드대의 정치학자인 레비츠키와 지블랫이 쓴 이 책은 이미 너무나 잘 알려진 책이라 많은 분들이 읽어봤을 거라 생각합니다. 저 역시 2017년에 책이 처음 나왔을 때 읽어봤습니다(참고로 원서도 영어공부하기 참 좋습니다. 어렵지 않게 우아하고 깔끔한 문장들이란!). 그렇게 잊고 지내다 최근 어떤 글을 쓰는 과정에서 다시 꺼내 보았습니다. 저자들은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되는 과정에서 암묵적으로 지켜왔던 규범이 무너지고 법이 허락하는 모든 걸 다 동원해서 대결하려는 태도(헌법적 강경성)의 증대가 민주주의를 어떻게 무너뜨리는지 여러 국가의 사례를 바탕으로 생생하게 그려냅니다. 무척 재미있게 읽었던 책인데 이번엔 좀 무거운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습니다. 12.3 계엄 이후 한국사회, 그리고 한국 민주주의의 방향성을 고민하는데 있어 누구에게나 도움이 될 만한 책입니다.
4) 이회, <기출변형가족>
이 책은 1983년생 법원 공무원인 미혼 남성과 보육원에서 자란 13살 소년이 맺은 관계의 기록입니다. 후원자에서 시작해 동거인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는 한 소년의 성장담이자 저자의 30대를 관통하는 삶이기도 합니다. 늘 마음속으로나마 비슷한 꿈을 갖고 있기에 따뜻한 결말을 기대하며 책을 펼쳤지만 끝은 지극히 현실적입니다.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이래저래 많은 과제를 남기는 이 책은 특히 미혼과 1인 가구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가족형태를 꿈꾸는 사람들이 한번쯤 펼쳐 봐도 좋을 것 같은 책입니다. 저자의 글맛도 좋아 앉은 자리에서 새벽까지 다 읽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열권의 책 중 가장 최신작이며 가장 덜 유명한 작가의 책이지만 그 재미와 의미는 결코 다른 추천서들에 뒤지지 않습니다.
5) 스티븐 킹, <유혹하는 글쓰기>
세계적인 미스터리 작가가 쓴 글쓰기에 대한 책으로 읽히는 글을 쓰고 싶은 사람들에겐 보석과도 같은 조언들을 담고 있습니다. 물론 단기간에 글쓰기 실력을 키울 수 있는 꿀팁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지극히 원론적인, 그래서 우리가 간과하는 부분들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있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박사과정에 있을 때 사회학과의 ‘글쓰기 세미나’의 주교재 중 하나였습니다. 분야와 무관하게 읽히는 글들의 공유된 속성은 존재한다고 할까요. 저자의 풍부한 글쓰기 경험이 사례로 담겨 있어 에세이로 읽어도 충분한 재미를 주는 책입니다.
6) 세스 스티븐스 다비도위츠의 <데이터는 어떻게 인생의 무기가 되는가>
바야흐로 데이터의 시대입니다. 점차 우리의 일상이 데이터로 기록되고, 다시 일상을 주도하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수많은 데이터들이 분석되어 우리 앞에 ‘진실’이라며 주어지는 오늘날, 데이터를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는지, 그것을 조금은 쉬운 언어로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지에 대한 감을 갖는 것은 무척 중요합니다. <데이터는 어떻게 인생의 무기가 되는가>는 이러한 통찰력을 주는 사례들로 가득 차있습니다. 세상만사를 데이터로 읽어내는 즐거움을 느끼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아울러 사람들을 만났을 때 여기 나온 사례 몇 개만 이야기해도 상당히 똑똑해 보일 수 있습니다.
7) 은희경, <새의 선물>
2001년 여름에 이 소설을 읽었습니다. 한 여자의,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했던 1969년과 소설이 출간되었던 해인 1995년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입니다. 솔직히 정확한 줄거리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다만 빠져들어 읽었던 그 순간의 기억만은 또렷합니다. 사실 이 책이 일종의 ‘인생 책’으로 남은 이유는 책과 함께 했던 추억 때문입니다. 2002년 초여름, 비수기인 용평의 한 콘도에 엎드려 이승환 7집에 실린 ‘Christmas Wishes’(여름에 크리스마스 노래를 듣는 감성이란!)를 무한 반복해 들으며 읽었던 책, 그때 함께 했으나 이제는 연락이 닿지 않는 친구는 지금 잘 지내고 있을지 궁금합니다. 독서경험에 의미를 불어넣어줄 사람, 공간, 시간을 찾는 것도 지나고 나면 꽤 괜찮은 추억으로 남는 것 같습니다.
8) 고원정, <빙벽>
아직 군사주의 문화가 사회에 강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던 중학교 1학년 시절(1994년)에 접하게 된 책으로 1960년대 제주도와 1980년대 초 군사정권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어른들이 읽는 아홉 권짜리 대하소설을 꼬마가 무협지의 속도로 읽어낼 수 있었을 만큼 굉장히 흡입력 있는 책입니다. 요즘은 거의 활동을 하고 있지 않지만 작가는 1990년대엔 여러 권의 베스트셀러를 썼고,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를 진행할 만큼 인기가 많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이 다루고 있는 한국 현대사에 대한 관심이 많은 때여서 읽게 되었는데 덕분에 개인과 조직(군대)의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의 부작용은 이때부터 군에 입대할 때까지 약 9년여 동안 군대공포증에 시달려야 했다는 것입니다. <토지>나 <장길산>, <객주> 같은 대하소설에 비해 문학적 완성도가 높진 않지만 제 기억 속에선 더 강렬하게 남아 있습니다.
9) 김우창의 <지상의 척도>
문학평론가인 김우창의 첫 책이자 이분을 이야기 할 때면 늘 회자되는 <궁핍한 시대의 시인>이 아닌 두 번째 저서인 이 책을 더 좋아하는 이유는 그곳에 실린 한 편의 글 때문입니다. '예술과 초월적 차원'이란 글의 첫 두 페이지는 하나의 글로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문장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김우창의 글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미문도 아닙니다. 오히려 모래를 씹는 것 같은 서걱거림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읽다보면 그 사유의 깊이에 푹 빠지고 맙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아니 대학에 와서도 잠깐 동안 제 꿈은 문학평론가였습니다. 이 책을 읽고 평론가가 되어보고 싶다는 꿈을 완전히 접었습니다. 영원히 이런 글은 쓸 수 없을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 고마운 책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온전히 독자로만 다가갈 때, 책을 읽는 행복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10) 장영희, <내 생애 단 한번>
2000년대 초만 해도 집에서는 인터넷 속도가 느려서 수강신청을 위해 중앙전산실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인기강좌의 경우 2-3분이면 마감이 되기에 ‘속도전’은 필수였습니다. 저도 소위 인기강좌를 한번 수강해보기 위해서 결국 중앙전산실 앞에서 밤을 지새우겠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2001년 겨울, 저녁 7시 반쯤 전산실 정문 앞에 섰고 몇 시간이 지나자 어림잡아도 500명은 넘는 사람들이 제 뒤로 서 있었습니다. 그 뿌듯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죠. 아침이 오길 기다리며 가로등 불빛에 기대어 봤던 책이 바로 장영희의 <내 생애 단 한번>입니다. 어릴 적 소아마비에 걸려 장애의 편견을 견디고, 넘어서며 번역가이자 손꼽히는 에세이스트가 된 저자(영문학 교수)의 글은 무척 담백합니다. 어깨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 있지 않다고 할까요, 아니면 솔직하다고 할까요. 책의 뒷부분에 실린 ‘킹콩의 눈물’을 읽으며 눈물을 찔끔찔끔 흘렸던 스무 살을 떠올려봅니다. 책장을 덮고 감동에 젖어있을 때 중앙전산실의 문이 열렸습니다. 저는 일등으로 달려 들어갔으나 처음 고른 컴퓨터가 먹통이라 다른 컴퓨터로 옮기는 사이 이미 수강하고자 했던 인기강좌는 마감이 되어버렸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책상 위에 올려놓은 휴대폰도 누군가 훔쳐가 버렸습니다. 이 책이 아니었다면 최악으로 남았을 그날의 기억은, 이 책 덕분에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습니다. 아직도 꼭 5권은 연구실에 ‘상비’하며, 삶의 고단함을 호소하러 찾아오는 학생들에게 한권씩 안겨주는 책이기도 합니다.
| 6. 맺음말
처음 의도와는 달리 ‘의식의 흐름’과도 같은 글이 되어버렸습니다. 요청받은 분량의 1.5배가 된 것은 덤입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지만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하나입니다. 뭐든 읽으시고, 가능하면 다양하게 읽으시길 바랍니다.
글을 쓰면서 언젠가는 저도 서울대 중앙도서관의 책장에 꽂을 수 있는, 그래서 누군가 꺼내볼 수 있는 책을 쓰고 싶다는 바람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새로운 도전이자 꿈 하나를 부끄럽게 적으며 글을 닫습니다.
정인관
숭실대학교 정보사회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사회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예일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디지털 불평등, 사회이동, 교육사회학, 양적연구방법론 등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2025-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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