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식인의 서재
서울대학교 빅데이터 기반 지식정보플랫폼 LikeSNU에서는 우리 사회 각 분야 지식인의 마음 속 서재에 꽂혀 있는 다양한 책들을 소개합니다.
네 번째 지식인의 서재로 서울대학교 음악학과 원유선 교수님의 서재를 소개합니다.
학부 때 작곡과 철학을 공부하고, 대학원에서 음악학을 전공했습니다.
음악 이면에 담긴 생각을 읽어내고, 성찰하며, 언어로 표현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다소 조악하고 거칠더라도, 참신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음악을 좋아합니다.
원유선서울대학교 음악학과 강사
연구분야 현대음악, 디지털음악학, AI음악, 음악미학
학력 이화여자대학교 작곡과, 철학과 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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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 - 現 (사)음악미학연구회 편집이사
저서 ※ 클릭 시 도서관 소장 사항 확인 가능 - 「뉴노멀의 음악: 디지털 컨버전스 음악으로 미래를 듣다」(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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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이 모든 책들을 소장하고 있다는 게 공표되었을 때 사람들이 받은 첫 느낌은 엄청난 행복감이었다. 모든 사람들은 손에 닿지 않은 곳에 숨겨져 있는 어떤 보물의 주인이 된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 루이스 보르헤스, 「바벨의 도서관」
작년 연말, 유튜브가 보내준 ‘한 해 동안 내가 즐겨들은 음악 리스트’를 보고 새삼 놀란 적이 있습니다. 제가 좋아했다고 믿어온 방대하고 폭넓은 음악들에 비해서, 특정 장르의 노래들이 유독 상위권에 몰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순위에 기록된 음악들이 하나같이 비슷비슷한 느낌이라는 점도 눈에 띄었습니다. 곰곰이 되짚어보니, 어느 순간부터 제가 자발적으로 음악을 찾아 나서기보다 알고리즘이 이끄는 대로만 음악을 듣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런 경험이 꼭 저만의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요즘 많은 분이 체감하듯이, 알고리즘은 우리의 이용 기록을 분석해서 좋아할 법한 콘텐츠를 끊임없이 제안해 줍니다. 덕분에 원하는 정보를 아주 쉽게 얻을 수 있는 것 같지만, 실상은 비슷한 취향의 울타리 안에 머무는 ‘필터버블(Filter Bubble)’에 나도 모르게 갇히고 맙니다. 저 또한 알고리즘이 추천해주는 관성 속에 안주하면서 새로운 소리를 탐구할 기회를 놓치고 있었던 셈입니다.
매일 음악을 생각하고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새로운 음악과 책을 발견할 때의 즐거움이 몹시 닮아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음악을 만날 때의 설렘이,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낯선 책을 맞닥뜨리는 경험과 비슷하게 다가오기 때문이지요. 정보는 넘쳐나지만, 오히려 ‘나만의 의미 있는 발견’은 어려워진 시대에, 도서관은 매우 소중한 대안적 공간이 되어줍니다. 무수한 정보 속에서도 알고리즘이 설계한 좁은 경로를 벗어나, 필터링 되지 않은 세계 그 자체를 가감 없이 보여주니깐요.
저에게는 도서관의 책장 사이를 자유롭게 거닐며, 문득 눈에 들어온 책을 집어 드는 순간이 유난히 설레고 즐겁습니다. 도서관 본관에 들어서자마자 큐레이션 되어 있는 신간 도서들을 천천히 구경하는 시간 역시 저에게는 놓칠 수 없는 기쁨입니다. 혹시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갔다가, 생각지도 못한 다른 책을 만나서 뜻밖의 수확을 거둔 적이 있지 않나요? 소설가 보르헤스가 「바벨의 도서관」에서 묘사했듯이, 무한히 확장되는 텍스트의 세계 속을 거니는 일은 알고리즘이 대신해줄 수 없는 ‘길을 잃을 수 있는 창의적인 자유’를 우리에게 선사한다고 봅니다.
그동안의 독서 습관을 되짚어보니, 제가 음악을 대하는 태도와 책 읽는 방식이 몹시 닮아있더군요. 책을 대하는 저의 소소한 일상들을 공유해봅니다.
♬ 여러 책을 동시다발적으로 읽는 편입니다.
한 책만 처음부터 끝까지 파고들기에 세상에는 너무나 재밌는 책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어떤 책에 꽂히면 주저하지 않고 당장 찾아서 읽는 편입니다. 여러 책을 동시에 찾아서 읽다 보니 자연스레 이 책, 저 책을 오가며 읽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또 연구 과정에서 여러 문헌을 참고하는 직업적 특성이 이러한 독서 습관을 자연스럽게 형성한 듯합니다. 특히 연구할 때 비슷한 주제를 다룬 여러 책을 넘나들며 읽다 보면, 책들 사이에서 일종의 화학 작용이 일어나듯 뜻밖에 재밌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는데, 제게는 가장 즐겁고 짜릿한 순간입니다. 유년 시절부터 힙합, 발라드, 댄스음악, 전자음악, 뉴에이지, 월드 뮤직, 현대음악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이리저리 건너뛰며 듣던 청취 습관과도 닮아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런 비선형적 읽기 역시 창의적인 사고의 중요한 원천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텍스트에 오래 머무르지 못하는 독서 경험이 인간의 사고 능력을 퇴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하는 시선도 있습니다. 하지만 비선형적 읽기는 이미 거스를 수 없는 독서 방식이 되었고, 여러 책을 오가며 읽는 과정이 오히려 뻔하지 않은 사고를 가능하게 해주기도 합니다. 저는 한 권에 깊이 집중하는 ‘선형적 읽기’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이리저리 건너뛰며 읽는 ‘비선형적 읽기’ 또한 창조적인 사고의 훌륭한 원천이 된다고 믿습니다.
♬ 기차나 비행기에서 책 읽기의 몰입을 즐깁니다.
비교적 시간이 자유롭던 학부 시절에는, 심심할 때면 집에서 광화문 교보문고까지 버스를 타고 가며 책 읽는 시간을 참 좋아했습니다. 아직은 KTX가 비싸게 여겨지던 대학교 2학년 때 서울역부터 부산역까지 무려 6시간이나 새마을호를 타고 부산 여행을 간 적이 있었습니다. 워낙에 이동시간이 길어서인지 내릴 쯤에는 철학책 한 권을 다 읽을 정도였죠. 그때 이전까지 도통 이해되지 않던 어느 철학자의 사상을 이해했던 성취감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소중한 기억입니다. 최근에는 여행지로 가는 어두컴컴한 비행기 안에서 이어폰으로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을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여행지로 이동한다는 설렘과 외부와의 단절된 고립감이 합쳐져 독특한 몰입감과 해방감을 선사해주기 때문이죠. 아이러니하게도 도서관이나 집보다, 낯선 곳으로 이동하며 읽는 선형적 책 읽기가 훨씬 더 깊은 몰입감을 줄 때가 많습니다.
♬ 책에 정성 들여 메모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기억하고 싶은 구절에는 형광펜으로 줄을 치고, 기억하고 싶은 페이지에 책갈피나 포스트잇을 붙여두는 일을 좋아합니다. 포스트잇이 많이 붙었다는 건 그만큼 제가 애정 하는 책이라는 의미입니다. 어릴 적부터 필기하는 것을 무척 좋아했던 저는 책 여백에 정성 들여 메모 남기는 일을 즐겨 왔습니다. 디지털 자료가 늘어난 요즘에는 PDF 파일에 타이핑으로 메모를 남기는 경우가 많아졌지만, 가끔은 종이책에 사각사각 필기하며 기록을 남기던 시간이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 타인의 서가를 구경하는 것도 좋아합니다.
예전에 한 작곡가를 인터뷰하러 갔다가 작업실에 빼곡히 들어선 책들을 구경하면서 오랫동안 책 이야기를 나누다, 미처 인터뷰를 끝내지 못한 적이 있습니다. 그만큼 책은 제게 강한 호기심과 지적 자극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입니다. 비록 그날 인터뷰는 끝내지 못했지만, 책을 배열한 방식과 즐겨 읽는 책들을 통해 그 작곡가의 음악 세계를 마음 깊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서가를 들여다본다는 것은, 그 사람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되기도 합니다. 비단 개인의 서가뿐만 아니라,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책이 배열된 방식을 바라보는 일만으로도, 같은 책이 다른 의미로 다가오고 새로운 생각이 촉발되기도 합니다.
♬ 활자에서 소리로
본문에 언급된 음악이나 영화를 찾아보는 습관은 저의 상상력을 넓혀주는 소중한 통로입니다. 예전에 한 음악 비평서에 언급된 음악들을 빠짐없이 찾아서 들어본 적이 있는데, 연구에 큰 도움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인생 플레이리스트’를 발견하는 즐거움도 누릴 수 있었습니다.
무수한 고민 끝에 제게 영감을 준 책들을 꼽고 나니, 곧이어 공통점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제가 그동안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여겨온 관습이나 통념에 질문을 던지는 책들에 매료되어 왔다는 점입니다. 아래에 추천하는 책들 역시 오랫동안 추하거나 비주류로 치부됐거나, 너무 익숙해서 의심하지 않게 된 생각들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책들입니다. 또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하고 있는 것들을 질문하는 책들이기도 합니다.
저는 동시대 음악을 연구하는 음악학자입니다. 세상에는 K팝, 발라드, 힙합, 재즈, 트로트, 인디음악 등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있지만, 저는 그중에서도 주로 최근에 만들어진 현대음악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가치가 있음에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거나, 막 주목받기 시작한 작품들의 예술적 가치를 설득하고 소개하는 일에 소명을 느낍니다. 그 과정에서 종종 “불편하다”, “무섭다”, “이게 도대체 왜 음악이냐”라는 불평이나 저항을 마주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소설이나 영화, 미술 작품이 그러하듯, 음악 역시 쾌나 즐거움, 카타르시스 외에도 경악, 충격, 컬트 등 다양한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T. S 엘리엇이나 제임스 조이스의 불친절한 시를 읽으면서 단박에 파악되지 않아도 계속해서 이해하려 노력하듯이, 음악 역시 우리를 불편하게 만듦으로써 새로운 생각을 촉발할 수 있다면, 그리하여 우리의 사유를 확장해준다면 그것이야말로 중요한 예술적 기능 아닐까요?
오랫동안 낯설고 불편한 음악들에서 가치를 찾고 연구해오다 보니, 저의 독서 취향 역시 자연스럽게 음악과 닮아갔던 것 같습니다. 제가 아끼고 좋아하는 책들은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던 생각들을 송두리째 뒤흔들며, 일상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책들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음악과 마찬가지로 소외된 것, 무시된 것, 들리지 않던 것, 비주류로 밀려난 관점 속에서 오히려 아직 탐색되지 않은 가능성과 창의성이 발견된다고 믿어왔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관심사는 자연스럽게 철학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습니다. 저는 학부 시절 작곡과 철학을 함께 전공했는데, 철학이 제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이유 역시 현실의 제약에서 벗어나 다양한 생각을 촉발한다는 점에 있었습니다. 너무 익숙해져 더 이상 질문하지 않게 된 생각들을 삐딱하게 바라보게 만들고, 다양한 상상을 할 수 있게 만든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이 글에서 책 이야기를 음악 이야기와 나란히 놓아보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책과 함께 읽으면 좋을 만한 음악들을 QR 코드로 함께 소개해두었습니다. 책을 읽는 경험이 텍스트에만 머무르지 않고, 다채로운 감각으로 확장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저는 꼭 전위적이거나 난해한 예술만이 우리를 자유롭게 만든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떤 책이든, 또 어떤 음악이든, 우리를 익숙한 패턴에서 잠시 벗어나게 하고 생각의 폭을 넓혀준다면, 그것은 충분히 가치 있는 경험이라고 봅니다.

추의 역사
“이토록 매혹적인 추”
움베르토 에코
열린책들 (2008)
‘불쾌한’, ‘끔찍한’, ‘소름 끼치는’, ‘역겨운’,
‘비위에 거슬리는’, ‘그로테스크한’, ‘혐오스러운’,
‘징그러운’, ‘밉살스러운’, ‘꼴불견의’, ‘추잡한’,
‘더러운’, ‘음란한’, ‘거부감 드는’, ‘무서운’, ‘비열한’,
‘괴물 같은’, ‘오싹한’, ‘기분 나쁜’, ‘무시무시한’,
‘겁나는’, ‘으스스한’, ‘악몽 같은’, ‘지긋지긋한','욕지기 나는’,
‘악취 나는’, ‘가공할’, ‘야비한’, ‘볼품없는’, ‘싫은’,
‘피곤한’, ‘화나는’, ‘일그러진’, ‘기형의’
❝ 움베르토 에코는 「추의 역사」 서문에서 ‘추함’과 연관된 온갖 자극적인 형용사를 열거하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에코가 나열한 단어들은 세간에서 말하는 아름다움과는 대척점에 놓인 것들입니다. 그러나 에코는 예술이 오로지 아름다움만을 다뤄왔다는 통념에 의문을 제기하며, ‘추’의 시선으로 예술사 읽기를 시도합니다.
「추의 역사」는 「미의 역사」와 함께 기획된 책이지만, 저를 단박에 사로잡은 것은 「추의 역사」였습니다. 고대 그리스 신화와 성서, 중세 회화, 문학과 철학, 록 음악과 현대음악에 이르기까지, 에코는 ‘추’가 예술사 속에서 어떻게 형상화되어 왔는지를 집요하게 추적합니다. 방대한 시대와 장르를 종횡무진하는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지 않아도, 관심 가는 장면을 넘겨가며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즐거움을 줍니다. 책 곳곳에 실린 화려한 도판들 덕분에, 그림을 감상하는 경험만으로도 흥미를 끄는 책입니다.
이 책은 지나가는 선원들을 유혹해 파멸로 이끄는 세이렌과, 자식들을 살해하는 메데이아 등 고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잔혹한 이야기들로 시작됩니다. 이어서 반인반신의 형상, 악마와 괴물, 지옥의 이미지들이 차례로 호출되기도 합니다. 성경 속 이야기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가시관을 쓰고 피를 흘리는 장면이나, 순교자들이 고통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 역시 ‘숭고한 추’라는 관점에서 새롭게 조명됩니다.
산업혁명 이후 도시가 만들어낸 새로운 형태의 추를 조명하는 장 역시 흥미롭습니다.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에 등장하는 빽빽하고 추잡한 런던의 풍경, 에드거 앨런 포가 「군중 속의 사람」에서 묘사한 사무적이고 공허한 눈빛의 인간 군상들은 근대 도시가 품은 불쾌하고 낯선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이 책이 인상적인 이유는 단순히 추한 것들을 긁어모은 것에 그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에코의 핵심적인 주장은 ‘추’가 시간과 문화에 따라 상대적으로 규정되어 왔다는 점입니다. 한 시대에 불편하고 천하다고 여겨졌던 것이, 다른 시대에는 예술이 보여주는 도전이나 저항의 상징으로 읽히기도 합니다. 가령 피어싱과 같은 신체 변형은 과거에는 음란함이나 사탄 숭배의 징표로 간주되지만, 20세기에는 기존 질서에 대한 젊은 세대의 도전으로 읽히기도 했다는 거죠.
후반부로 갈수록 에코의 주장은 더욱 또렷해집니다. 사이보그, 기계 장치를 부착한 인간, 장애 예술에 담긴 ‘추’를 다루며, 그는 불치병과 장애, 사회에서 배제되고 무시되어 온 사람들의 현실이 결코 ‘미’의 언어만으로는 포착될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영화감독 데이비드 린치는 “세상에는 늘 표면 아래에서 진행되는 완전히 다른 무엇이 존재하며, 영화가 하는 일은 그 표면 아래의 갈등과 어둠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 책은 그러한 불편함을 회피하지 않고 세상으로 끌어냈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멋지고 매혹적입니다. ❞

청중의 탄생
“진지한 청취에서 파편적 청취로”
와타나베 히로시
강 (2006)
❝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콘서트홀에 가본 적이 있으신가요? 콘서트홀은 우리에게 명작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지만, 동시에 어딘가 부자연스럽고 불편한 공간이기도 합니다. 음악이 시작되면 우리는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헛기침을 삼키며, 최대한 조용히 귀를 기울여 집중하려고 노력합니다.
「청중의 탄생」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클래식 음악의 청취 문화에 질문을 던지는 책입니다. 왜 클래식 음악 콘서트장은 대부분 과거의 음악으로 채워져 있을까요? 왜 우리는 콘서트홀에서 숨죽여 청취해야 할까요? 이 책은 우리가 자연스럽게 믿어온 청취 관습과 음악적 규범이 사실은 보편적이거나 시대를 초월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집중해서 듣는 음악’의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18세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음악을 ‘진지하게 청취한다’는 개념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음악은 예배나 연회처럼 다른 활동과 함께 소비되는 경우가 많았고, 오로지 소리에만 몰두해 듣는 문화는 드물었습니다. 공공연주회가 등장한 이후에도 음악회는 카드놀이와 잡담이 동반되는 사교의 장에 가까웠습니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 부상한 부르주아 계층은 음악을 교양과 자기 수양의 대상으로 삼았고, 그 과정에서 음악은 ‘즐기는 것’보다 ‘이해해야 하는 것’으로 변모하게 됩니다. 이후 19세기에 음악을 듣는 일은 감각적 즐거움을 넘어 작품의 구조와 의미를 파악하는 진지한 경험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거장 작곡가의 신화 부수기’도 감행합니다. 변화된 청취 문화 속에서 작곡가는 숭배의 대상이 되었고, 그들의 음악은 위대한 작품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 책에서는 베토벤의 초상화와 동상, 날조된 전기 등을 근거로 삼아, 베토벤의 천재 신화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파헤칩니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저자는 20세기에 등장한 복제 기술로 인해 진지한 음악 청취가 근본적인 변화를 겪었다고 말합니다. 음반, 스피커, 축음기 같은 매체를 통해 음악은 더 이상 콘서트홀에만 머무르지 않게 되었고, 언제 어디서든 들을 수 있는 것이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해서 듣는 대신, 원하는 부분만 반복해서 듣는 방식도 당연해졌죠.
오늘날 클래식 음악은 청취 문화의 변화 속에서 급격한 진통을 겪는 중입니다. 음악은 유튜브와 스트리밍 서비스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자유롭고 다채로운 방식으로 소비되고 있습니다. 클래식 음악 역시 이어폰을 끼고 원하는 부분을 반복해서 듣거나, 여러 트랙을 오가며 감상하는 일이 요즘은 오히려 익숙한 풍경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청취 방식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면서 클래식 음악이 맞지 않는 청취 방식 때문에 곧 종말을 맞이할 것이라고 한탄하는 의견도 존재합니다. 이러한 비판은 스마트폰을 비롯한 읽기 매체의 변화가 독서 방식을 퇴행시켰다고 우려하는 시선과도 닮아 있습니다.
그러나 「청중의 탄생」은 다시 묻습니다. ‘우리가 ‘올바른 듣기’라고 믿어온 방식은 과연 보편적인 것인가?’ 음악을 담아내는 공간과 매체는 필연적으로 음악에 대한 태도 역시 변화시킵니다. 변화하는 청취 환경 속에서 클래식 음악 또한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며 진화해가는 것은 아닐까요? ❞

포스트프로덕션
“걸작과 쓰레기 분별하기”
니꼴라부리요
그레파이트온핑크 (2016)
❝ 「포스트프로덕션」은 디지털 문화의 확산 이후 예술에서의 ‘새로움’이 더 이상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데 있지 않으며,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선택하고 조합하며 변형하는 방식으로 이동했다고 주장합니다. 박사 논문을 쓰던 시절, 이 책은 제게 엄청난 자극을 주었는데, 그 이유는 오늘날의 예술 활동이 우리 일상의 삶과 결코 분리된 것이 아니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스마트폰으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우리의 모습을 떠올려봅시다. 우리는 범람하는 정보의 바다 속에서 원하는 이미지를 검색하고, 선별하고, 약간의 변형을 더해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거나 메신저를 통해 공유하는 일을 번복합니다. AI 시대라고 불리는 지금도 이 모습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원하는 바를 프롬프트로 입력하고, 생성된 결과물 가운데 일부를 선택한 뒤, 추가적인 지시와 수정을 거듭하며 맞춤형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방식은 이미 익숙한 문화적 행위로 자리 잡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책의 저자인 부리요는 오늘날의 ‘창작’이란 기존의 것을 선택하고 선별해 후편집하는, 이른바 ‘포스트프로덕션’적 행위로 변화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한 예술가의 말을 인용하며, 오늘날의 예술 활동을 “개가 주인이 던져버린 것을 다시 물고 오는 행위”에 비유한 바 있습니다. 정보 시대로 접어들면서 과거의 산물들이 기하급수적으로 축적되었고, 그 결과 예술의 개념 자체가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부리요에 따르면 예술가들은 더 이상 미술관에 있는 작품을 넘어서려 하기보다, 방대한 자료 가운데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골라 조작하고 재구성하는 데 주력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부리요가 오늘날의 예술가를 ‘고고학자’에 비유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예술가들이 과거의 산물을 재활용해 새로운 의미를 덧입히듯이, 동시대의 예술가들은 무언가를 발명하는 존재라기보다 과거의 파편과 잔해를 탐색해 새로운 해석을 부여하는 고고학자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그는 DJ의 모습에 예술가의 모습을 빗대기도 합니다. DJ가 기존의 음악을 재편집해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내듯이, 오늘날의 예술가들 역시 기존의 문화적 산물들을 재활용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낸다는 것이죠.
오랜만에 「포스트프로덕션」을 곱씹어보면서, AI 공학자 아흐메드 엘가말(Ahmed Elgammal)의 한 인터뷰가 떠올랐습니다. 그는 베토벤이 미처 완성하지 못한 <교향곡 10번>을 완성하는 AI 프로젝트의 책임자로 참여했는데, 방대한 결과물을 생성해내는 AI의 기술력만큼이나, 의미 있는 소리들을 선별하고 재조합하는 인간의 판단이 중요하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말합니다. 엘가말은 AI가 인간의 작업을 전적으로 대체하기보다는, 앞으로 인간의 비전과 ‘선별(curating)’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포스트프로덕션」이 전하는 메시지 역시, 정보가 범람하는 시대에 타인의 산물을 무비판적으로 차용해도 된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이 책은 자동화된 기술로 무엇이든 쉽게 얻을 수 있는 시대일수록, 음악학자 캐롤 버거(Karol Berger)의 표현처럼 ‘걸작과 쓰레기를 분별’하고, 그것을 자기만의 것으로 변형해낼 수 있는 안목, 감각, 그리고 철학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

레트로마니아
“과거에 중독된 음악”
사이먼 레이놀즈
작업실유령 (2017)
❝ 「레트로마니아」는 동시대의 음악 문화를 진단한 책입니다. 우리는 최첨단 기술이 지배하는 일상을 살고 있지만, 기록이 쉬워진 만큼 역설적으로 과거가 끊임없이 소환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인터넷에는 오래된 음악과 신문, 뉴스, 공연 자료들이 끝없이 업로드되고, 과거는 언제든지 꺼내 소비할 수 있는 것이 되어버렸죠.
사이먼 레이놀즈는 이러한 현상을 단순한 복고 트렌드로만 보지 않고, 디지털 환경이 만들어낸 새로운 문화 조건으로 바라봅니다. 모든 문화적 산물이 디지털 데이터로 변환되면서 저장과 공유가 극도로 쉬워져 버렸고, 그 결과 사람들은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과거에 집착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레이놀즈는 철학자 자크 데리다의 개념을 빌려, 무엇이든 인터넷 아카이브에 저장하고 공유하려는 충동을 ‘아카이브 열병(Archive Fever)’으로 명명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음악 문화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 책은 록과 팝은 물론 샘플링, 매시업, 혼톨로지 음악 등 최근의 음악 경향을 폭넓게 조명하면서, 동시대 음악이 얼마나 과거의 양식에 의존하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동시에 이 책은 우리가 음악을 소비하는 방식에도 주목합니다.
“아이팟과 유튜브는 우리에게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접근성과 선택권을 주었고, 한 개인이 평생 들어도 모자랄 만큼 방대한 온라인 아카이브를 선사했다. 그리고 그 결과, 우리는 음악을 듣지 않게 되었다. 들을 음악이 너무 많은 우리는 더 좋은 부분으로 넘어갈 수 있는 스크롤바나, 다음 곡으로 넘어갈 수 있는 컨트롤 버튼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다. 선택에 대한 부담마저 임의 재생 모드가 해결해주니, 우리가 할 일이라곤 그저 다운로드 버튼을 눌러 세상의 모든 음악을 쓸어 담는 일밖에 없다.”
과연 오늘날 새로운 음악은 더 이상 불가능해진 것일까요? 저자의 비판적 시각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오늘날 음악에서 ‘새로움’과 ‘독창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고민하게 만드는 중요한 화두를 던집니다. ❞
| 「레트로마니아]의 번역판과 원서 표지를 나란히 실어봅니다. 원서의 표지가 책의 메시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

백남준: 말에서 크리스토까지
“음악으로 음악 넘어서기”
백남준
백남준아트센터 (2018)
❝ 세계적인 예술가 백남준이 남긴 메모와 편지, 악보, 인터뷰 등을 엮은 책입니다. 백남준은 “나의 아이디어는 항상 기술적 능력을 앞서기 때문에 늘 보조 기술자가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는데, 책에 수록된 기록을 따라가다 보면 백남준이 지금도 여전히 앞서가는 사유를 감행했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가장 인상 깊은 점은 백남준이 관습과 규칙, 그리고 장르의 경계를 거침없이 넘나드는 사고를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책에 담긴 기록에서 백남준은 쇤베르크의 음악을 “무조성(a-tonality)”, 존 케이지의 음악을 “무작곡(a-composition)”, 그리고 자신의 음악을 “무음악(a-music)”이라는 개념으로 묘사합니다. 현대음악의 선구자 쇤베르크가 불협화음을 해방시키고, 케이지가 작곡의 개념을 해체했다면, 백남준은 음악 그 자체를 해방시키려 했다는 것이죠. 여기서 말하는 ‘음악 그 자체’란 소리나 형식에 국한되지 않고, 음악을 둘러싼 제도와 권위를 모두 아우르는 것입니다.
책에 실린 악보들에서는 백남준 특유의 유쾌하고 도발적인 전략을 엿볼 수 있습니다. 백남준은 오선보 대신 언어로 된 지시문 형태의 악보를 다수 남겼습니다. 이를테면 "로봇 오페라"의 악보에는 “아리아가 없는 오페라는 지루하다”, “카라얀은 너무 바쁘다”, “바그너는 너무 길다”와 같은 문장들이 적혀 있습니다. 한 번쯤은 떠올렸을 법하지만 쉽게 말로 꺼내기 어려운 생각들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며, 음악계의 권위와 신화를 유쾌하게 뒤흔드는 방식이 인상적입니다.
책에 실린 또 다른 악보 "교향곡 5번" 또한 몹시 도발적입니다. 악보에는 “1월 1일 새벽 1시에 연주하라”처럼 특정한 날짜와 시간을 명령형으로 제시하는 지시문이 등장하는데, 연주 시점은 10의 1000승 × 10의 99승 × 11의 11승 번째 해, 나아가 121212121212…번째 해까지 이어지며 사실상 무한대로 확장됩니다. 이러한 기록 방식을 통해 백남준은 연주를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라 삶 전체의 시간으로 확장시키고, 악보를 읽는 행위만으로도 시공간의 제약을 넘어서는 해방감을 선사합니다.
2026년은 백남준 서거 2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백남준: 말에서 크리스토까지」는 남다른 스케일의 사유를 끝까지 밀어붙였던 백남준을 만날 수 있는 귀중한 책입니다. 사고의 해방을 경험하고 싶은 분들께 기꺼이 추천하고 싶습니다. ❞

디지털의 배신
“알고리즘 사회 파헤치기”
이광석
인물과사상사 (2020)
❝ 「디지털의 배신」은 디지털 기술이 작동하는 방식과 그 이면을 비판적으로 조명한 책입니다. 구글, 유튜브, 넷플릭스, 인스타그램, 그리고 최근의 챗GPT와 제미나이 같은 플랫폼들은 이미 우리의 취향과 행동을 조직하는 하나의 문화적 생태계가 되었습니다. 뉴스에서는 연일 AI와 빅데이터가 가져올 장밋빛 미래를 강조하지만, 이 책은 그러한 기술 낙관주의 담론을 지적합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기술의 뒤편에서 작동하는 권력 구조를 날카롭게 드러낸다는 점에 있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플랫폼은 단순히 콘텐츠를 중개하는 수단이 아니라, 우리의 취향과 행동을 적극적으로 형성하는 장치입니다. 우리는 좋아요, 댓글, 별점 매기기와 같은 일상적인 행위를 통해 끊임없이 데이터를 생산하고, 그 데이터는 다시 알고리즘 분석의 재료가 됩니다. 알고리즘은 이용자를 가능한 오랜 시간 플랫폼에 붙들어두기 위해 설계되었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이미 좋아할 만한 것들만 반복적으로 제시합니다. 그 결과, 우리는 낯설고 불편한 것들을 점점 접하지 못하게 되고, 서서히 편향된 사고에 휘말리게 됩니다.
또 하나 인상적인 대목은 디지털 기술의 사용이 환경 파괴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점이었습니다. 스마트폰과 컴퓨터, 스크린을 밝히는 전력조차 화석 연료 기반의 에너지 위에서 작동합니다. 인터넷 검색 한 번이 주전자에 물을 끓이는 데 필요한 에너지와 맞닿아 있다는 사실은, 디지털 세계가 결코 비물질적이거나 무형의 영역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합니다.
이 책은 궁극적으로 기술에 대한 비판적 리터러시의 필요성을 역설합니다. 저자는 우리가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을 좇아가면서도, 정작 그 기술의 작동 원리와 사회적 효과에 대해서는 문맹에 가깝다고 지적합니다. 손으로 사물을 만지며 느꼈던 감각과 몸의 경험은 점점 사라지고, 기술을 비판적으로 성찰할 기회 역시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죠. 이 지점에서 저자는 기술의 내부 구조와 권력 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리터러시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디지털의 배신」은 기술 만능주의와 기술이 약속하는 유토피아적 미래로부터 한 발 물러서, 동시대 기술 사회를 윤리적으로 성찰하도록 이끕니다. 기술에 파묻혀 살아가는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질문과 태도를 던지는 책입니다. ❞

리흐테르
“천재 음악가의 비밀일기”
브뤼노 몽생종
정원출판사(2005)
❝ 이 책은 러시아의 전설적인 피아니스트 스비야슬라토프 리흐테르를 재조명한 책으로, 20세기의 비범한 피아니스트가 겪은 파란만장한 삶과 음악적 안목을 엿볼 수 있습니다. 많은 음악 천재들이 그러했듯이, 리흐테르 역시 한때 우울증과 신경쇠약에 시달렸고, 까다롭고 괴짜 같은 성격으로 풍문에 휩싸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천재의 신화적 이미지나 자극적인 일화에 집중하기보다, 오히려 소탈하고 진솔한 인간으로서의 리흐테르를 조명합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개인의 경험을 통해 20세기 음악사를 현장감 있게 접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회고담은 리흐테르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며, 그와 직접 교류했던 동시대 예술가들의 모습이 여과 없이 드러납니다. 가령 그는 스탈린 정권 아래에서 굴곡진 삶을 살아야 했던 작곡가 쇼스타코비치를 떠올리며, 그의 불안하고 예민한 성격을 솔직하게 서술합니다. 리흐테르에 따르면 쇼스타코비치는 천재이자 광기에 휩싸인 사람이었고, 동시에 자존심이 강하면서도 쉽게 상처받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리흐테르의 표현에 따르면 쇼스타코비치는 신경쇠약에 시달리면서도 끝까지 정중함과 예의를 잃지 않았던 인물이었습니다.
책에서 가장 매료된 부분은 리흐테르가 무려 25년 동안 쉬지 않고 기록해 온 음악 일기였습니다. 그의 일기에는 짧지만 날카로운 문장들이 곳곳에 등장하며, 우리가 흔히 ‘거장’이라 부르는 연주자들의 음악을 거리낌 없이 비평하는 대목들이 인상적입니다. 그는 호로비츠, 키신, 폴리니, 로스트로포비치, 아바도, 정명훈 등 당대 최고의 연주자들의 연주를 신랄하게, 그러나 충분히 납득 가능한 근거를 들어 평가합니다. 사적인 기록인 만큼 거친 표현도 있지만, 그만큼 날카롭고 생생합니다.
“그는 총명하고 연주를 잘 한다. 하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바다에 뛰어들지는 않는다.”
(피아니스트 키신에 대한 비평)
“이 쇼팽은 대단한 근육질이다. 우선 모든 것이 ‘포르테’다. 시정이나 섬세함은 없고, 즉흥성도 느껴지지 않는다. 모든 것이 더없이 정확하긴 하지만.” (피아니스트 폴리니에 대한 비평)
흥미로운 점은 리흐테르가 비평의 칼날을 자기 자신에게도 들이댔다는 점입니다. 그는 뛰어난 재능을 타고났음에도 누구보다 자신에게 엄격한 태도를 유지했습니다. 하루에 세 시간씩 피아노 치는 규칙을 어기지 않았고, 아침저녁으로 양치질을 거르지 않았으며, 프루스트와 토마스 만을 꾸준히 탐독했습니다. 그의 일기에는 자신의 연주를 냉정하게 평가하는 대목들이 반복해서 등장하는데, 그중에서 한 구절은 그의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내 녹음을 들을 때마다 실망을 금할 수 없다. 언제나 내가 예상하던 것과 완전히 같은 것을 듣게 되기 때문이다. 신선함도 의외성도 발견할 수 없는 데서 오는 실망감….”
리흐테르가 ‘천재’라는 명성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움을 갈망했던 연주자였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

타인의 고통
“관음증적 향락에서 연대의 회복으로”
수전 손택
이후 오퍼스 10 (2004)
❝ 우리는 매일 뉴스와 SNS를 통해 전쟁과 재난, 폭력의 참혹함을 마주하며, 타인의 불행에 연민과 슬픔을 느낍니다. 그러나 「타인의 고통」에서 수전 손택은 바로 이 지점을 문제 삼습니다. 사진이나 영상을 통해 보여주는 전쟁은 사실상 자극적인 이미지이자 오락적 스펙터클과 다름없다는 것이죠.
이 책의 독창적인 지점은 전쟁과 고통이 ‘볼거리’로 소비되어 온 역사를 회화, 사진, 영화, 문학 등 다양한 사례를 통해 추적한다는 데 있습니다. 손택은 고통받는 육체의 이미지를 보고자 하는 욕망이 인간에게 본래적으로 내재해 있음을 인정합니다. 인간은 나체 이미지에 끌리는 것만큼이나, 고문당한 몸, 절단된 사지, 훼손된 시신의 이미지에서도 은근한 쾌락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손택은 이러한 시선이 아이러니하게도 기독교 예술의 전통 속에서도 발견된다고 말합니다. 지옥의 형상, 세례 요한의 참수, 갓 태어난 히브리 남자아이들의 학살 장면은 모두 고통과 폭력이 반복적으로 시각화되어 온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1839년 카메라가 발명된 이후, 전쟁의 참혹함은 점점 더 적극적으로 기록되기 시작했고, 1930년대 후반부터는 종군 사진사라는 직업이 본격적으로 등장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소련의 정치범 처형, 베트남 전쟁, 걸프 전쟁, 그리고 미국과 이라크의 대테러 전쟁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장면이 이미지로 생산되어 대중에게 제공되었습니다. 그러나 손택은 이러한 이미지의 끝없는 재생산이 오히려 전쟁을 ‘현실’이 아닌 ‘구경거리’로 전환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우려합니다.
그녀에 따르면 잔혹한 이미지의 반복적 재생산은 타인의 고통을 실제적인 문제로 인식하기보다, 일종의 ‘관음증적 향락’으로 전락시키기 쉽습니다. 예컨대 전쟁으로 파괴된 마을의 이미지를 보며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런 일은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전쟁터에 있지 않다. 나는 아직 살아 있다.” 이미지로 가득 찬 세계에서 전쟁은 점점 추상화되고, 그 끔찍함을 실감하기는커녕 오히려 무감각해지기 쉽습니다. 손택은 이미지가 보여주는 현실과 실제 현실 사이에는 언제나 큰 간극이 존재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하며, 타인의 고통을 단순한 연민의 대상으로 소비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SNS의 확산과 함께 개인주의가 더욱 극단화된 오늘날, 「타인의 고통」은 여전히 생각할 거리를 던져줍니다. 틱톡과 인스타그램 같은 플랫폼을 통해 타인의 고통이 가볍고 빠르게 소비되는 지금의 환경은 손택의 문제의식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최근 스탠드업 코미디언 원소윤이 소설 「꽤 낙천적인 아이」에서 서술한 다음의 웃픈 장면은, 타인의 고통에 점점 무감각해진 우리의 현실을 보여줍니다.
“실종 안내 문자가 와요. 굉장히 자주 와요. 세상에 실종자가 이렇게 많은 줄은 미처 몰랐어요. 한번은 친구랑 제 휴대폰이 동시에 요동치길래 깜짝 놀랐어요. 친구가 황급히 휴대폰 화면을 확인하더니 별일 아니라는 듯 쓱, 뒤집더라고요. ‘아아, 그냥 실종.’”
- 원소윤, 「꽤 낙천적인 아이」
❞

우리는 어떻게 포스트휴먼이 되었는가
“신체를 잃어버린 유토피아를 향한 질문”
캐서린 헤일스
열린책들 (2013)
❝ 2015년 무렵, 심상치 않은 표지에 이끌려 「우리는 어떻게 포스트휴먼이 되었는가」를 서울대 도서관에서 집어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에야 기술의 확산과 함께 ‘포스트휴먼’이라는 단어가 비교적 익숙해졌지만,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포스트휴먼은 국내에서 막 주목받기 시작한 담론이었습니다. 특히 책의 서두에 등장하는 오스트리아의 공학자 한스 모라벡의 주장은 제게 강한 종말론적 상상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모라벡은 인간의 의식을 컴퓨터에 다운로드하고, 뇌의 정보를 기계에 이식함으로써 인간이 생물학적 한계를 극복하고 영생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그러나 헤일스는 이러한 전망을 책 전반에 걸쳐 비판적으로 검토합니다. 헤일스는 사이버네틱스 담론과 SF 소설을 바탕으로, 신체를 벗어난 인간이라는 포스트휴먼적 상상이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를 추적합니다. 헤일스에 따르면 포스트휴먼은 인간 신체의 종말이나 기계의 도움을 빌린 영생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간과 기계는 각자의 질적 차이를 유지한 채 상호작용하며 공진화하는 존재입니다. 즉 포스트휴머니즘은 신체를 떨쳐내는 개념이 아니라, 기술과 함께 끊임없이 변화하는 신체에 기반한 사유라는 것입니다. 또한 포스트휴먼을 이미 결정된 미래가 아니라 우리가 지금 어떤 이야기로 구성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개념으로 바라본다는 점 또한 몹시 인상적입니다. ❞

사이보그가 되다
“불완전함의 미학”
김초엽, 김원영
민음사 (2012)
❝ 위에서 소개한 「우리는 어떻게 포스트휴먼이 되었는가」의 문제의식은 「사이보그가 되다」에서도 이어집니다. 어릴 적부터 각각 청각장애와 지체장애를 가지고 살아온 김초엽과 김원영은 이 책에서 기술로 장애를 말끔히 ‘극복’할 수 있다거나 신체를 떨쳐낼 수 있다는 유토피아적 서사를 정면으로 비판합니다. 이 책이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이론이 아닌 실제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두 저자는 사이보그에 대한 대중적 이미지가 장애인의 삶을 설명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현실에서 인간과 기계의 접합은 결코 매끄럽지 않습니다. 기계는 피부를 짓무르게 하고, 염증을 일으키며, 끊임없는 마찰을 동반합니다. 보청기 배터리가 꺼질까봐 늘 노심초사했다는 김초엽의 고백처럼, 기술은 언제나 지속적인 관리와 점검을 필요로 합니다.
장애인을 위한 기술이 기업이 베푸는 온정과 선의의 결과처럼 그려진다는 점을 비판하는 대목 또한 인상적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은 기술을 사용하는 주체가 아니라, 도움을 받는 존재로만 그려지기 일쑤입니다. 나아가 많은 SF 소설이 장애를 극복하고 벗어나야 할 결핍된 상태로 규정한다는 점도 날카롭게 짚어냅니다. 「사이보그가 되다」는 포스트휴먼 담론에 덧씌워진 과장된 수사와 낙관주의를 걷어내고, 지금 여기서 기술과 분투하는 인간의 불완전한 몸과 경험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책입니다. ❞
이번 글을 쓰면서 학부 시절부터 쓴 일기와 다이어리, 블로그 등 곳곳에 흩어져 있던 독서 목록들을 다시금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책과 다시 만나기도 했고,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취향을 확인하는가 하면, 어느덧 새롭게 자리 잡은 낯선 관심사를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당신이 듣는 음악이 곧 당신을 말해준다(You are what you listen to)”는 어느 스트리밍 서비스의 광고 문구처럼, 책이야말로 한 개인의 내밀한 취향과 사유의 궤적을 고스란히 담아낸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서울대학교 도서관은 제게 늘 감사한 공간입니다. 입학 후 박사 과정을 마칠 때까지, 그리고 강단에 서 있는 지금까지도 저는 습관처럼 도서관에 가는 그야말로 ‘도서관 덕후’입니다. 그래서인지 "지식인의 서재" 기고를 부탁하셨을 때, 그동안 도서관에서 보낸 숱한 시간들이 스쳐 지나가며 무척이나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돌이켜보면 지금의 저를 만든 ‘팔할’은 도서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심지어 지금도 관정도서관 한켠에서 이 글을 마무리하고 있는 중이니까요.(웃음)
이번에 소개한 책들 가운데 일부는 절판되어 시중에서 구하기 어려워졌다는 점은 못내 아쉽습니다. 그렇기에 도서관의 존재가 더욱 중요하게 느껴집니다. 어떤 책이든 이윤의 논리에 따라 사라지거나 폐기되지 않고, 계속해서 보존된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속도와 효율이 지배하는 시대에, 세상의 속도에 휘둘리지 않고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책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위로가 됩니다. 서두에서 이야기했듯이, 알고리즘이 만들어놓은 경로를 잠시 벗어나 도서관의 드넓은 서가에서 한 번쯤 길을 잃어보는 건 어떨까요. 도서관에서의 길 잃기가 예상치 못한 새로운 사유의 경로를 열어주리라 기대합니다.
저자 캐서린 헤일스는 기술사와 문화사를 넘나들며 세 가지 주제, 즉 정보는 어떻게 신체를 잃었는가, 사이보그가 어떻게 문화적, 기술적으로 구성되었는가, 사이버네틱스 담론에서 자유주의적 휴머니즘 주체는 어떻게 해체되는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작업을 위해 헤일스는 포스트휴먼을 낳은 학문적 토양인 <사이버네틱스>의 역사를 1945년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망라하며, 시기에 따른 담론의 변화를 포착하고, 각 시기의 담론을 선명하게 반영하는 과학 소설의 텍스트를 분석한다. 1999년에 처음 출간된 이 책은 첨단 과학인 사이버네틱스 이론의 틀에서 문학을 분석하는 획기적인 시도를 했고 그 가치를 인정받아 미국 비교문학협회에서 그해 가장 탁월한 도서에 수여하는 르네 웰렉상을 수상하였으며, 후대의 연구에 수없이 인용되면서 이 분야의 연구자라면 피해 갈 수 없는 가장 중요한 고전이 되었다.
인공지능, 로봇, 사물인터넷, 자율주행, 가상현실 등 오늘날 ‘미래’라는 말을 채우고 있는 내용을 보면, 마치 그 미래는 인간의 몸과는 무관하게 전개될 것만 같다. 인간의 개입을 최소화한 채로 움직이는 세상, 첨단 기술을 동원해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를 뛰어넘은 신체들이 이끌어가는 사회는 고통도 갈등도 불가능도 없는 편리하고 매끄러운 곳일까? 열다섯 살 전후로 신체의 손상을 보완하는 기계들(보청기와 휠체어)과 만나 ‘사이보그’로 살아온 김초엽과 김원영은 인간의 몸과 과학기술이 만나는 현장에 줄곧 관심을 가져왔다. 두 사람은 오늘의 과학과 기술이 다양한 신체와 감각을 지닌 개인들의 구체적인 경험을 고려하지 않은 채 발전해가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문제의식을 공유한다. 각기 청각장애(김초엽)와 지체장애(김원영)를 지닌 채 살아온 시간과 장애권리운동의 자장 안에서 키워온 정체성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이들은 장애라는 고유한 경험이 타자, 환경,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과학기술과 결합할 때 우리가 맞이할 수 있는 다른 내일을 제시한다. 장애인의 인지 세계와 감각, 동작을 중심으로 새롭게 설계한 세계를 상상하는 김초엽, 각기 다른 취약함과 의존성을 지닌 존재들이 더 긴밀하게 접속하여 서로를 돌볼 수 있는 미래의 기술을 기대하는 김원영. 두 사람은 각자의 오랜 문제의식을 멀리, 또 깊숙이 밀고 나아가 이 세계의 다양한 구성원들이 모든 위계와 정상성 규범 너머에서 서로를 재발견하고 환대할 미래를 그린다. 여기, 사이보그라는 상징을 통과해 더 인간적인 미래의 어느 날에 도달할 짜릿한 여행이 준비되어 있다.
피아니스트 스비야토슬라프 리흐테르의 삶과 음악을 짜임새 있는 문학 형식으로 엮은 책이다. 리흐테르와 나눈 대담 기록과 그가 25년 동안 쓴 음악일기를 함께 실었다. 전 생애를 통해 자신에 대해 침묵을 지켜온 연주가 리흐테르는, 세상을 떠나기 전 브뤼노 몽생종과 나눈 대화를 통해 자신에 얽힌 많은 오해와 거짓들을 걷어낸다.2부를 이루는 리흐테르의 음악수첩은 1970년부터 연주 활동을 마치는 1995년까지, 그가 25년 동안 쓴 일기이다. 실황 연주나 녹음에 대한 인상과 감회를 솔직하고 간명하게 기록해 놓았다. 음악과 연주자들에 대한 솔직하면서도 날카로운 감상, 폭넓은 음악적 편력, 자기자신에 대한 극도의 엄격함과 냉정함을 보여준다.한국어판에는 기존의 영어판이나 일어판에 없는 1994년의 서울 공연 기록이 담겨 있다. 리흐테르가 처음이자 마지막 내한공연을 가졌던 1994년, 예술의전당에서 공연된 오페라와 지휘자 정명훈에 대한 평을 실은 것이 눈에 띈다.1940년부터 스비야토슬라프 리흐테르는 공적인 연주를 할 때마다 그 프로그램과 장소와 정황을 상세하게 기록했다. 1995년까지 이어진 이 육필 메모를 바탕으로, 리흐테르의 레퍼토리와 변천과정, 세계 전역에서 열었던 연주회의 수를 알 수 있는 표를 만들어 부록으로 실었다.
<타인의 고통>은 9.11 세계무역센터 폭파 사건을 비롯해 미국이 주도한 이라크 전쟁 전후의 현실 정세에 대한 ''지적'' 개입이다. <해석에 반대한다>의 ''투명성 Transparency''은 9.11 테러와 미국의 이라크 전쟁에도 그대로 적용된다.손택의 관찰에 따르면, "사진 없는 전쟁, 즉 저 뛰어난 전쟁의 미학을 갖추지 않은 전쟁은 존재하지 않는다". 전쟁이나 참화를 찍은 사진에 대해 사람들이 어떤 태도를 취해 왔는지 분석하여 "고통을 둘러싼 도상학의 기나긴 족보"를 밝히고 2차 세계대전 당시 포토리얼리즘이 꽃피웠음을 확인시킨다. 이를 토대로 이미지가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자극적이 될수록 타인의 고통은 소비될 수밖에 없으며, 그에 따라 고통의 이미지를 담는 행위는 일종의 ''포르노그라피''가 되고, 이미지를 보는 행위는 ''관음증''으로 변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손택은 이 관음증을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라고 본다.한국어판은 원서와는 조금 다르다. 영어판에는 없는 도판 48장을 수록했으며, 책을 펴내기 전 손택이 발표한 기고문을 실었다. 최근에 발표된 순서대로 ''문학은 자유이다'', ''현실의 전투, 공허한 은유'', ''다같이 슬퍼하자, 그러나 다같이 바보가 되지는 말자'', ''우리가 코소보에 와 있는 이유'' 이렇게 4편이다.
세계적인 예술가 백남준의 국내 최초이자 유일한 ‘백남준의 책’인 <백남준 : 말에서 크리스토까지>는 백남준 연구자인 이르멜린 리비어(Irmeline Lebeer)와 에디트 데커(Edith Decker)가 미국, 유럽, 한국 등지에 흩어져 있는 백남준의 글들을 모아서 공동으로 편집한 앤솔로지의 우리말 번역이다. 독자는 백남준의 목소리를 통해 누구보다 먼저 예술과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사유하고 실천했던 그의 예술세계에 생생하게 다가갈 수 있다.그동안 백남준 연구자들과 일반 대중들에게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았던 이 책은 2010년 초판을 찍은 지 8년 만에 새로 발행되었다. 개정판은 초판에 원문만 실렸던 5편의 번역문을 추가하고 원고 일부를 교체하는 등 더욱 새로운 모습으로 독자들을 찾아간다.백남준의 작업은 지극히 미래지향적이었으며, 그는 20세기에 이미 21세기의 언어와 문화를 이야기해왔다. 연구자에게 불만족과 미숙함을 각성시키는 그의 천진스러운 유산들은 앞으로도 우리에게 그의 예술을 연구하는 데 있어 무한한 동기를 부여할 것이다. 백남준의 정신세계가 온전히 담긴 이 책이 백남준의 예술을 연구하는 이들에게 귀중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첨단의 신생 테크놀로지가 우리에게 선사한 성장의 달콤한 열매만큼이나 기술 숭배가 가져온 부메랑 효과들을 살피고 경고한 책이다. 우리에게 테크놀로지의 유혹과 덫이라는 양자적 계기는 어쩌면 예고된 것인지도 모른다. 인류가 도구적 이성에 기대어 테크놀로지를 욕망할수록 지구환경과 인간 삶의 생태 순환계에 점점 균열이 가해질 수밖에 없다. 이제 생태 균열은 일상, 사회, 노동, 미디어, 생명에 걸쳐 거의 모든 영역에서 일어나고 있다.『디지털의 배신』은 기술 잉여가 만들어내는 굴절들, 즉 기술 자체가 사회 혁신과 진보로 슬그머니 등치되거나, 취약 노동이 기술로 매개되어 편리와 효율의 시장 논리로 둔갑하거나, 반(反)생태적 기술을 흡사 청정(淸淨)의 것으로 위장하거나, 기술이 우리의 취향을 주조하는데도 이를 풍요의 자유 문화처럼 보는 등 그 허구들을 뒤집어보고자 한다.
동시대 실천의 유형을 설정하고, 공통점을 찾기 위해 일련의 제작방식을 분석한다. 또한 과거에도 존재하였던 고전적 미술사적인 개념인 상호작용이나 참여가 어떻게 급진적인 관점에 의해서 예술가들이 재사유하는지를 분석한다. 특히 이 책은 동시대를 공유(sharing)와 예술가들에 대한 형식, 태도, 이미지의 목록화의 체계 속에서 바라보고 있는 오늘의 현상에 주목한다. 현장에서 작품을 누구보다도 주의깊게 살펴보고 묘사하는 니꼴라 부리요의 산물이며, 예술가의 흔적 속에서 드러나는 개념들을 치밀하게 구축하는 생생한 안내서가 될 것이다.
대중음악을 필터로 삼아 우리 문화 전반에 만연한 레트로 문화를 처음으로 철저히 파헤친 책이다. 그저 상업적인 복고 경향에 대한 한탄을 넘어 이러한 문화가 우리 시대의 독창성과 독자성에 종말을 고하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자문한다. 서두부터 저자는 충격적인 팝의 종말을 예고한다. 결코 끝까지 듣지 않는 호화 박스 세트와 함께, 대학 시절에 듣던 앨범을 충실히 재연하는 회고 공연의 값비싼 입장권과 함께, 팝은 종언을 고한다. 텔레비전을 틀어보면,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건 끝없는 과거의 재탕뿐이다. 음악 프로그램은 ‘오늘’의 가수에게 전설의 명곡을 부를 것을 요구하고 ‘응답하라’의 감수성으로 노스탤지어를 자극한다. 영화관에 가면 당신은 과거 고전의 행렬을 발견할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레트로 문화가 우리 시대를 위협하는 중대한 장애물이 될 수 있음을 밝히기 위해 음악, 패션, 미술, 뉴미디어는 물론 레트로 장난감과 레트로 포르노 산업까지 전방위 문화 영역에서 발견되는 풍부한 단서를 끌어온다.
1989년, 젊은 음악학도 와타나베 히로시의 책이 출간되었을 때 일본 음악계는 신선한 충격에 휩싸였다. 음악을 작품이나 작곡가, 연주가 아닌 청중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기 때문. 저자는 언제나 소비자 입장이었던 청중이 거꾸로 음악문화를 바꾸는 장면을 포착함으로써 소비 행위가 곧 생산 행위임을 이야기한다.근대적 정신성에 얽매인 진지한 청중들이 ''음 자체''와의 ''놀이''를 중시하는 ''경박한 청중''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구체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풀어냈다. 근대적 족쇄를 풀고 자유롭게 음악을 향유하는 대중들의 움직임을 살핀 독특한 관점의 사회학적 음악문화론이다.근.현대 음악문화를 새로운 시각으로 읽어낸 이 책은, 연주와 작품에만 치중하던 기존 음악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파격적인 해석 한편에 서양음악의 역사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간결하게 정리하고 있는 점 또한 인상적이다.
전작 <미의 역사>에 이어 출간된 움베르토 에코의 책이다.<추의 역사>는 시각 문화와 예술 작품 속의 ''추''의 개념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탐색한다. 악마, 마녀, 죽음, 괴물 등을 ''추''의 한 현상으로 아우르고 일종의 문화, 역사 비평을 통해 ''추''의 기호학을 구축한다.이 책에는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없는 수많은 추의 이미지가 실려있다. 또한 인간 심리가 끊임없이 추에 매혹되어 온 역사를 이야기하기 때문에 다루는 대상은 더욱 광범위하다. 추 연구의 토대가 거의 전무한 까닭에 텍스트들은 주로 문학 작품 위주로 소개되었다. 추의 이미지들과 시대별로 특징적인 추의 현상들과 사회적 배경, 추에 대한 문화적 수용의 양상들까지 설명하는 텍스트들이 에코의 글과 탁월한 감식안으로 한 페이지 안에 나란히 실려 있어 보다 쉽게 에코의 미학에 다가갈 수 있다.